<생태영성 강좌 5, 2021년 11월 24일>
대림절이 이번 주일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우리 영혼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계절이다. 우리도 작은 예수로 성장해가는 시간이면 좋겠다.
여는 기도
아버지, 아버지게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17:21~23
비록 하찮은 벼룩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면 천사보다 고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물은 평등하며
만물은 하나님 자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사랑하시되 피조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으로 여겨 사랑하십니다
-마이스터 에카르트
창조세계는 거룩한 책인가?
“창조를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을 잘 못 알 수 밖에 없다.”(아퀴나스)
“한없는 경이로움 속에 하나님의 현존을 알아보게 된다.”(헤셀)
경이로움은 기도의 시작이다.
경이로움은 관상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연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원천을 하나는 자연 세계에서 신적 존재가 이루는 현시로, 다른 하나는 성경 세계에서 신적 존재가 이루는 현시로 보았다. 이 두 원천은 서로 안에서 서로를 통해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구를 구하는 것은 원래의 신적 현존을 구하는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베리
엘 고어의 세가지 제안
1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을 잘하면 좋겠다. 물건을 살 때에도 생태적이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좋겠다. 비록 값이 좀 비싸더라도.
2 사회공동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3 정치나 법이 바뀌어야 한다.
생태적 기도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Transformation, 회심, 회개
아는 것이 삶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체화가 필요하다.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생태적 기도가 들어가야 한다. 기도가 바뀌어야 한다. 기도가 바뀐다는 것은 삶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이다.
성태적 헌신
예수님을 따르는 생태적 제자도가 필요하다.
헌신은 짐이 아니고 힘이 된다.
교회가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짐이 아니고 힘이 된다. 우리의 헌신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나의 의가 드러나게 하기 위함도 아니고,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제자도이다.
말씀에 비어보고 훈련하고 헌신하고 하는 것이다.
생태적 기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기도는 하나님-인간-창조세계가 맺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생태적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는 기도이며, 창조세계와 맺는 관상적 관계형성이다.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 진다. 나와 하나님과 맺는 친밀한 관계에 창조세계가 들어와야 한다.
관계로서의 기도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사귐, 친교, 사랑, 예배)
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
관계는 피조 세계의 본질
관계는 창조와 구원의 본질
만레사 수도원에서의 침묵기도
기도는 예수님과 시간 보내기지.
기도는 예수님과 눈맞춤이야.
생태 제 일 원칙은 모든 존재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습니다인데 연결 되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관계이다.
관계는 상호침투, 상호내재 이런 뜻이다. 피조 세계의 본질은 관계이다. 관계는 창조와 구원의 본질이다. 관계적 언어이다.
관계로서의 기도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는 기도
특별한 기도가 아닌 그리스도교 전통에 충실한 지금 여기에서 드리는 기도
만물과 우주와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드리는 기도
성령 안에서 삶을 갱신하는 기도 (회개, 결단, 소비, 만족, 검소한 삶…)
관계의 핵심이 바라봄이다.
침묵의 언어를 듣는 기도(엘리야의 기도)
왕상 18:37~40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햝은지라
왕상 19:11~12
놀라운 승리를 했던 엘리야가 무기력하게 우울증에 빠져 있는 순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호렙으로 불러 산에 서라 하시더니 크고 강한 바람, 지진, 지진 후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화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나 세미한 음성(a sound of sheer silence)을 듣는다.
왕상 19: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 지라.”
갈멜산 (왕상 18장) 호렙산(왕성 19장)
불로 응답 세미한 음성
승리 사명
관상적 응시
관계의 중심에 바라봄이 있다.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 바라봄이 관계의 핵심이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관상적 응답은 세상을 오만하고 실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그 눈은 자연의 놀라운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강력한 활동에 즐거움을 느끼며, 포식자와 먹이 관계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삶과 죽음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 안에 서 있게 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 우리가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너무 큰 것은 없고, 너무 작은 것도 없다… 믿음의 맥락 안에서, 관상적 바라봄은 세상을 성사(거룩한 하나님의 현존)로 바라보게 한다. … 지구는 그 안에 있는 모든 포조물과 함께, 가장 근원적인 성사이며, 하나님의 은총의 현존과 축복의 통로이다.” 엘리자베스 잔슨
관상기도 Contemplation
월터 버거하르트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실제”
관상이 어려운 이유는 실용주의 (실용성이 가치와 의미를 결정) 때문이다.
가만히 않아 있어야 한다. 가만히 바라보아야 한다. 분주하면 안된다.
시간을 예수님 앞에서 낭비하는 것이 기도다라고 헨리 나우웬은 이야기 한다.
관상은 실제와 맺는 관계적 친교(intuitive communion with the real)이다.
실제와 하나됨, 성령께서 교통하게 하심이, 컴뮤니언하는 것이 관상이다.
A long loving look at the real-contemplation을 그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사랑으로 실제를 바라보기(들을 聽-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귀 耳 열개의 눈 目-10개의 눈으로 전 존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일 한 一 마음心-궁휼이 여기는 마음 부모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으로 듣고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라보다 Look at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라.
붙잡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관상 ‘볼 관(觀)’ ‘서로 상(相) – 하나님과 우리의 눈맞춤, 선하신 주님은 나를 바라보시고 나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
중도, 불편심, detachment – 있는 그대로 볼 때 감사가 솟구쳐 오른다.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중도, 불편심, detachment’이다. 나의 관념, 나의 사상에 잠겨있으면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렵다.
꽃을 15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 하나님 창조의 놀라운 신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과 성령께서 함께 하심이 드러날 것입니다라는 뜻일 것이다.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않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높여드릴까를 생각할 때 필요한 훈련이 중도, 불편심, detachment이다.
오랫동안 Long
들음
충분히, 서두르지 않고-충분히 서도르지 않아야 한다.
Jimp into the painting!
수 모스텔로 데이브레이크 헨리 나우웬의 친구였다. 수가 그 이야기를 공개강의에서 나누어 주셨다. 오타와 박물관에 갔었다. 수는 5분 정도 바라보니 볼 게 없었다. 헨리는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그림 앞에서 일어나지 않고 바라보았다. 왜 그랬나 라고 물어보니 그랬다. 그림 안으로 뛰어들어가라.
물질과 영의 범주는 불이적 관계
사랑스런 Loving
일치, 불이, 하나 됨이다.
불이적 체험, 대자대비
하나님-인간-창조세계 삼위적 일치
측은히 여기는 마음,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 마음, 온전한 존재다 사랑받는 존재다 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자녀들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거기까지가 나다.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에 의하여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 밥 맛있게 먹고 있으면 나와 상관없는 세계이다.
실제 real, reality
실제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실제는 살아있는, 동사로 표현되는 관계망 안에서 관계, 전체이다. 어린이 웃음, 얼음과 폭염, 고통과 기쁨, 호수, 폭포, 단풍…
관상적 삶은 가장 실제적 삶이다.
“생태적”, “실제적”, “관상적” 동의어에 가깝다.
‘그들의 본질은 그들의 거룩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흔적이며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실체입니다.
봄날 구름 낀 들판에 있는 한 망아지의 별나게도 엉성한 매력은 그분의 창조적 지혜가 하나님께 바친 신성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창밖에 있는 층층나무의 연한 빛깔의 꽃들은 성인입니다. 길가에 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작은 노란 꽃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성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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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들 가운데 숨겨진 호수들은 성인들이고 바다들도 우아한 춤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성인들입니다.
크고 갈라지고 반쯤 벌거벗은 산도 또 다른 하나님의 성인입니다.’
-토마스 머튼, 새 명상의 씨
한 존재 한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이다. 예수를 통하여 그런 존재들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를 그쪽으로 초대하는 초대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 31절
만남이 중요한데 나이 들어 꼭 만나야 하는 분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삶에서 화해되지 않는 양극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고통의 시간이 하나님을 배워가는 학교, 하나님을 알아가는 학교에서 배워가고 알아가는 학습시간이다. 자연과 화해하는…
이사야에서 표현하는 화해
어린아이와 뱀이 하나되고
원수가 용서되고
나의 추함이 받아들여지고
그런 노력이 있을 때 우리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도 거룩해 질 것이다.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주님께서 나를 빚어가시는…
하나님께서 이택희를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시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
죄: 탐욕, 분노, 어리석음, 교만-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시간의 그물, 장소의 그물, 지식의 그물
경로의존성과 확증편향
경로의존성이란? 한번 일정한 경로가 형성되고, 의존하면, 비효율적이어도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다.
심리적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1960년 영국심리학자 피터 웨이슨(Peter wason)이 제시한 신념이나 믿는 바를 유지하려는 인간 본능. 자신의 믿음에 구멍이 뚫기는 것을 두려워해 반대되는 증거는 모조리 폄하하고 제거한다.
반향실 효과(Eco Chamber Effect)란?-비슷한 의견으로 불러싸여 편견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2022년 환경보호위원회>
책을 구입해서 함께 읽겠다.
아이디어를 쉐어하겠다
경험을 쉐어 하겠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하고 실천하겠다.
<관상적 응시를 위한 제안>
광야 경험-고독, 홀로 있음
축제의 기쁨을 개발-창조의 긍정
내재적 가치에 눈 뜸-경이로움과 놀람
소유하지 않고 즐기기-무소유
성인들과 사귀라-영적 모델
기독교 신앙 전통-우리의 우물
프란체스코/ 에카르트
기독교 전통은 아주 넓은 바다와 같다. 관상적 전통을 가지자.
생태적 기도를 위한 훈련
창조세계를 책으로 하는 렉시오 디비나
1) 가만히 멈추십시오.(Lectio)
2) 계속해서 응시하십시오.(Meditatio)
3) 창조세계와 함께 기도하십시오.(Oratio)
4) 하나님과 창조 세계 당신이 하나됨 안에 머물러 보십시오.(Contemplatio)
<어머니의 성소(聖所)/고진하>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닦고 또 닦으신다
간신히 기동하시는 팔순의
어머니가 하얀 행주를
빨고 또 빨아
반짝반짝 닦아놓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
(낮에 항아리를 열어놓으면
눈 밝은 햇님도 와
기웃대고,
어스름 밤이 되면
달님도 와
제 모습 비춰보는걸,
뒷산 솔숲의
청설모 다람쥐도
솔가지에 앉아 긴 꼬리로
하늘을 말아 쥐고
염주알 같은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며
저렇게 내려다보는걸,
장독대에 먼지 잔뜩 끼면
남사스럽제……)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 시집 『우주배꼽』(세계사, 1997) 중에서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쓴 도종환 시인은 한때 원인 모를 병환을 크게 앓은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아 거의 삶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시골에 지어놓은 ‘흙집’을 구입하여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몸이 조금씩 좋아지더니 마침내 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그는 흙집 예찬론자가 되었다. 어떤 세미나에서 그를 만나게 되어 흙집이 어떻게 병의 치유효과를 갖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대뜸 꽃병을 방에 갖다놓으면 일주일이 지나도 꽃이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머리가 깨끗한 기분을 맛본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숨 쉬는 집’에서 살고 그 점이 치유효과를 갖게 했던 것 같다. ‘항아리’도 흙집이다. 항아리도 숨을 쉬기 때문에 예로부터 항아리에 물도 받아놓고 장을 담그거나 음식을 저장했던 것이다. 숨을 쉰다는 점에서 항아리는 자연의 살아있는 존재와도 같다.
<지구의 기도 granddad’s prayers of the earth/Douglas Wood/illustrated by P.J.Lynch>
지구를 위한 할아버지의 기도 - 더글러드 우드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때 할아버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함께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멀리 가지 않았다. 또 빨리 가지도 않았고, 똑바로만 걷지도 않았다.
우리가 걷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왜 이건 뭐예요 ?”
“만약에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어느 날 나는 할아버지에게 기도에 관해서 물었다.
꽤 오랫동안 할아버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숲 속에 있는 키 큰 나무에 갈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하셨다. 그리고 대답하셨다.
“얘야, 너는 저 나무가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니?”
나는 나무 가까이 귀를 대고 기도 소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무가 하늘로 어떻게 뻗어 있는지 보렴.”
얼마나 하늘에 가까이 뻗쳐있는지 보렴.” 할아버지는 말했다.
“나무들은 구름과 해, 달과 별들에까지 뻗어 있단다. 나무들이 하늘에 이르는 길은 기도밖에 없단다.”
나는 나무를 생각하며 계속 나무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래된 이끼가 끼어 있는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바위도 기도 한단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자갈도, 돌맹이도 그리고 수목이 우거진 오래된 언덕도 기도하지. 그들은 고요함과 침묵으로 기도 한단다. 이 두 가지는 기도의 중요한 방법이지.”
나는 바위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다. 나는 작은 자갈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우리는 더 멀리 걸어서 작은 시냇가에 도착했다. 물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햇빛아래 반짝였다. 그늘진 곳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할아버지, 시냇물도 기도 하나요?” 나는 물었다.
“시냇물도 기도하지. 그리고 호수도 강도, 모든 종류의 물들이 다 기도를 한단다. 때로는 그들이 마치 바위처럼 조용히 기도하고 여기에 조용히 누워서 구름과 새, 해지는 것과 처음 떠오르는 저녁별을 비추주며 기도를 하지.”
“때로는 매우 힘차게 움직이며 기도를 한단다. 지구 표면을 가로질러 흘러가고 바다에 자신을 주기도 하고 하늘에 자신을 주기도 하지. 물은 항상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단다.”
“어떤 날은 물이 큰소리로 웃으며 기도를 하지. 어떤 날은 바위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한단다. 어떤 날은 물 밖으로 튀어 오르고 떨어지면서 기도를 하지.”
“그 모든 것이 기도하는 방법이란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기도하는 방법은 더 많단다.”
“키가 큰 풀들은 하늘 아래서 팔을 흔들면서 기도를 하지. 꽃은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으며 기도를 한단다.”
“바람은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때로는 울고 한숨을 쉬며 기도를 하지. 기도하면서 찬양을 하고 있단다.”
“새는 아침에 첫 노래로 기도를 하지. 새들은 노래하기 전까지는 침묵으로 기도한단다. 그리고 해가 질 때 부르는 로빈의 노래는 그날 저녁기도란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기도한단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들은 숲을 가로지르거나 혹은 물을 튕기면서 기도하지. 산등성이를 오르거나 구름 사이를 솟구쳐 오르거나 땅속으로 굴을 파면서도 기도하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지. 그것은 바로 기도의 선물이란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는 너머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들은 모든 것을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말한 바위, 나무, 풀, 새 그리고 꽃의 기도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내 나는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의 기도에 관해 물었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든 기도 중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사람들의 기도란다.”
“꽃향기를 맡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것도 기도가 된단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조용히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것, 천천히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을 느끼는 것, 새날 아침에게 ‘안녕’하고 말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기도 중 하나란다.”
“겨울날 눈 쌓인 숲 속에 서서 너의 숨결이 세상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느껴 보는 것도 기도란다.”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기도라 할 수 있지.”
“식탁에 앉아 가족과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잡은 것을 기억하며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은 가장 훌륭한 기도 중 하나란다.”
가끔, 할아버지는 말했다, “때로는 사람들이 병에 걸려 아플 때, 외로울 때,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도하지 그들은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나 조상에게 배운 말로 기도를 하겠지. 그러나 그들은 때로 진실하게 자신만의 말로 기도를 드려야 한단다. 기억해야할 중요한 것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되고 진실한 기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걸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나요?”
할아버지께서는 미소를 지었다.
“대부분의 기도는 사실은 질문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리가 만약 가까이에서 기도를 듣게 된다면, 기도는 거의 대부분 답이란다. 나무와 바람과 그리고 물처럼,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기도한단다. 기도는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바꾸는 것이지.”
“왜냐하면 우리가 바뀔 바로 그때 세상이 바뀐단다.”
그 이후로도 할아버지와 나는자주 산책을 했다. 나도 자주 지구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내가 그 기도를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돌아올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오래 동안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세상은 어둡고 외로워 보였다.
어느 날 내가 산책을 하러 갈 때까지는 말이다. 나는 키가 큰 나무 밑 바위를 발견하고 그 위에 앉았다. 가지가 머리 위에서 흔들렸고 미풍은 나뭇잎 사이에서 속삭였다. 가까이에서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로빈이 넝쿨 속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산들바람과 새소리와 물소리였다. 나는 기도 소리를 들었다.
지구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바로 내 할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함께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키가 큰 나무와 향기로운 꽃을 위해 기도합니다. 조용한 바위와 노래하는 새들, 특히 내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무언가 바뀐 것을 같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내 곁에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였다.
“Wood presents the subjects of prayer and deah in a way that stirs the imagination and offers hope. 나무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희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도와 죽음의 주제를 제시한다.”
번역가의 기도
나는 이런 기도를 배우기 원하며, 내 아들과 건과 겸이 지구의 기도를 배우기 원한다.
나의 기도
나도 이런 기도를 하며 손주 제영이와 시온이에게 이런 기도의 본을 보이겠다.
나도 이 할아버지가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게 되지 않을까.
맺음 및 과제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당신의 몸이 없으시다. 너의 몸, 너의 손, 너의 발 위에는. 그리스도는 세상을 연민으로 보기 위해서 너의 눈이 필요하시다. 선행을 하러 다니시기 위해서는 너의 발이 필요하시다. 사람들을 축복하기 뒤해서는 너의 손이 필요하시다. –아빌라 테레사 기도문
생태적 헌신
개인
공동체
전지구
이런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헌신하겠습니다. 라고 전체 카톡방에 올려보기로 하자.
전교회적으로, 전 지구적으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엘리야가 혼자서 이세벨과 싸우고 지쳐서, 도망한 후 호렙산에서, 침묵 속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은 후, 비로소 그는 이 세상에 자기뿐 아니라 또 다른 수많은 동지들이 있으며, 비로소 모든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우리의 기도가 멈추어 질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느날 더 이상 기도하지 못하고, 멈추어섰을때, 저는 비로소 제 삶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음을 제 몸이 부르짖고 있음을…저의 무의식까지도..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저와 함께 기도하고 있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도의 교향곡이자 합주곡이었습니다. “고마워요,”라고 나는 기도했다, “이 나무들과 향긋한 꽃, 단단한 바위들과 노래하는 새, 특히 . . . 우리 ~에 대해.”
호세아2장 21~2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출처: https://inwardoutward.tistory.com/entry/지구를-위한-할아버지의-기도-더글러드-우드-130128 [작은나무의 INWARD OUT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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