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3

아침에 시 한 편(박용재, 나희덕, 김사이)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들어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

문학일기 2024.05.14

어머니와 아들

누운 듯 비스듬히 앉아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드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늙수그레한 아들 아들과 눈 맞추며 몸짓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니 두 손 맞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아장아장 걸음 옮기신다 뒷걸음치는 아들과 따르시는 어머니 튤립보다 고결하고 라일락 향기 보다 진한 두 사람 눈가에 이슬 고인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2024년, 토론토의 한 이탈리언 식당에서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문학일기 2024.05.08

잊지 못할 선생님(고승만,이순섭)

본 시니어 대학에서 강의해 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분들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가자들은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고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글의 내용이 좋아졌고 읽기와 쓰기의 재미를 알아가시는 듯하였다. 안타깝게도 팬데믹 기간에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3~4년 공백 기간 중 함께했던 몇 분이 세상을 떠났다. 특별히 고승만 선생님이 잊히지 않는다. 팬데믹 기간 중이라 문병도, 문상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아쉽고 서운했다. 고승만 선생님은 글쓰기 반을 처음 만들고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하신 분인데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할아버지는 내게 한소(閑..

미셀러니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