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아침에 시 한 편(박용재, 나희덕, 김사이)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5. 14. 21:54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심장을 켜는 사람/나희덕>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들어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듯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지요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다해 부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통증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심장이 펄떡일 때마다 달아나는 음들,
웅크론 조약돌들의 깨어남,
몸을 휘돌아나가는 피와 강물,
걸음을 멈추는 구두들,
짤랑거리며 떨어지는 동전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기적소리,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얼굴은 점점 희미해지고

허공에는 어스름이 검은 소금처럼 녹아내리고

이제 심장들을 담아 돌아가야겠어요
오늘의 심장이 다 마르기 전에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허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조상할弔등잔燈)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로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어떤 나무의 말/나희덕>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럽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힘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꽆피우지는 마십시오.


<가끔은 기쁨/김사이>
검은 얼룩이 천장 귀퉁이에 무늬로 있는 것
곰팡이꽃이 옷장 안에서 활짝 피어 있는 것
갈라진 벽 틈새로 바람이 드나드는 것

더우나 추우나 습한 부엌에서 벌레랑 같이 밥 먹는 것
화장실 마닥에 거무스름한 이끼들이 익숙한 것
검푸른 이끼가 마음 밑바닥을 덮고 있는 것
드러나지 않고 손길 닿지 않는 곳에
끈적끈적함이 붉은 상처럼 배어 있는 것
삶 한켠이 기를 써도 마르지 않는 것

바람 한점 없이 햇볕 쨍쨍한 날
지상의 햇살 모두 끌어모아
집 안을 홀라당 뒤집어 환기시킬 때면
기름기 쫘악 빠진 삶이
가끔은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져
고슬고슬해진 세간들에 고마워서
그마저도 고마워서 순간의 기쁨으로 삼고
또 열심히 살아가는

김시아 시인의 말: 이 시는 지하방에서 살다가 옥탑으로 옮겨가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초고로 묵혀두었다가 한참 지나 쓴 것입니다. 지하방의 환경과 옥탑방의 환경이 아주 많이 다른 건 아니었습니다만, 햇살의 귀함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우중충하고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을즈음 햇살 좋은 날 빨랫줄에서 빳빳하게 말라 춤추는 빨래들과 바람이 왔다 간 집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순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맑아지는 마음이나 감정들은 돈이 많다거나 내 명의로 된 집이라거나 그런 것보다 비록 옥탑방일지라도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삼 느꼈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