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선택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9. 1. 13. 08:31

삼십대 후반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고 새로운 무엇에 도전하고 싶었다. 영어공부와 함께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가족 전체가 미지의 땅으로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겁도 없이 용감하게 결행을 했다. 처음해보는 해외생활. 생전 접해보지 않았던 영어를 익히며 현지에 적응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기쁨이 있었고 스스로 공부를 더 한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목표로 했던 공부를 마쳤다. 아내와 아이들을 캐나다에 남겨둔 채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재충전의 시간이 있었던 바라 그런지 일을 해도 재미가 있었다. 경영대학원과정에서 배운 의사결정기술과 커뮤니케이션기술을 현장에 적응하니 효과적이었다. 일에 빠져 십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돌아오라는 채근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토론토로 되돌아 왔다. 서울과 토론토에서 서로 떨어져 살았던 십년의 시간.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식탁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음을 느낀다.

거울을 바라보면 삼십대 후반의 팽팽하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대머리가 지고 흰머리가 군데군데 보인다. 초로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버린 얼굴을 보아도, 다 자란 아이들 모습을 보아도 때로는 낯설다. 시간의 공백이 도로에 패인 자국처럼 생채기로 남아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떠나기 전 부모의 둥지에 함께 있을 시간이 조금은 더 남아있어 다행한 일이다. 지나간 십년의 시간을 아쉬워하는 만큼 함께 하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행복을 누리자고 다짐하곤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살아오면서 느낀 이야기며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싶다. 서양적 사고에 더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할까 싶지만 그래도 해주는 게 좋겠다 싶다.

오늘 저녁도 잠시 시간을 내어 삶에 있어 중요한 것들에 대해 나누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하여 구두닦이와 신문 배달을 하며 일찍 인생을 배울 수 있었고, 약한 몸으로 태어나 평생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여 병원신세를 지지 않고 살 수 있었고, 초등학교만 졸업할 정도로 배우지 못하여 만나는 사람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 '마스시다 고노스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삶의 결과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비교적 잘 들어주니 고맙기만 하다.  

내일은 큰 아이가 교환학생 자격으로 영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육 개월 가량 체류하며 학업을 계속할 예정으로 있다. 낯선 곳에서 어려움도 겪고 예기치 않았던 상황도 맞게 될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마다 삶에 있어 그 태도가 결과를 좌우하는 진리를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삼십대 후반 스스로 공부를 더하겠다는 결심을 품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무작정 떠났던 나를 생각해 본다. 당시 어떻게 보면 무모한 결정일 수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 나쁠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큰 아이 역시 자신의 결심으로 캐나다를 떠나 영국에서 머무르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며 도전하기를 즐겨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부모의 입장에서 염려도 되지만 대견스럽기도 하다.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딸에겐 지금의 육 개월이 훗날 육년도 넘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가는 것이니 만큼 후회 없는 시간들로 채우고 돌아오길 바란다.

공부와 더불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교류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유럽 곳곳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써 더욱 겸손해지고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공의 열쇠는 환경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자세인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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