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이야기
이택희
북아메리카의 역사가 궁금했었다. 공룡들이 살았던 땅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을까. 그들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어떻게 올수 있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유럽인들보다 먼저 미지의 땅에 들어와 삶을 일군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수천 수 만 년 전에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가 맞닿은 때가 있었다. 이 시기 아시아인이 알래스카를 거쳐 북아메리카 땅으로 들어왔다. 털이 북슬북슬하고 상아를 길게 늘어뜨린 거대한 맘모스를 쫓아 동토의 땅을 건너온 것이다. 척박한 땅이지만 처절하게 견디며 적응한 끝에 부족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나자 인구가 천만을 넘어섰다. 크고 작은 부족 숫자만도 오천을 넘었다. 모피교역과 종교를 전하기 위해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인디언은 땅에 충만하였다.
사오백년 전이나 될까. 본격적으로 유럽인이 미지의 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잡초처럼 견뎌낸 인디언의 세월에 비하면 하룻밤의 일이다.
유럽인들은 모피를 얻기 위해 또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전하기 위해 인디언 들이 사는 곳을 드나들었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로부터 모피를 얻어가고 댓가로 무기와 양철 그릇, 술을 주었다.
유럽인들이 가져오는 선물은 달콤하였고 덕분에 일상적의 삶은 다소 나아지는 듯했으나 속으로는 크게 황폐해져 갔다. 유럽인들은 그들이 믿는 종교와 삶에 도움이 되는 도구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생전 접해보지 못한 병을 가져 왔다. 천연두, 홍역, 독감 등 크고 작은 병은 한번에 수백 수천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병마였다. 어려운 환경을 견뎌내고 무리를 이루어 나름대로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살만하자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유럽인이 가져온 문명이 꿀처럼 달았으나 달콤하던 꿀이 한 순간에 삶을 망가뜨리는 흉악한 무기로 변할 줄은 짐작도 못하였다. 알콜과 마약 병마는 오늘 날까지 원주민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가 되고 있다.
유럽인들은 인디언이 살던 땅을 공격하여 자신의 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인디언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지만 유럽인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때 북아메리카 땅에서 주인으로 살았던 그들은 지금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늑대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건 좀 으스스하지만 신기한 경험이다. 새벽 거실로 내려와 벽난로에 불을 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린다. 곧 이어 또 다른 늑대가 '우우우'하고 운다. 서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먹을 것을 찾아 나섰나 보다.
그저께 저녁 물건을 사러 외딴 가게에 차를 세우다 이십 미터 가량 앞에서 꼬리를 늘어뜨린 회색털의 늑대를 본 적이 있다. 다가서자 경계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며 몸을 틀었다. 바로 그 늑대가 아닐까. 곧 이어 개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겁을 먹은 엎집 개이리라.
늑대는 먹을 것을 찾아 민가를 배회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대지가 눈으로 덮였고 땅이 얼어붙어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나보다. 어쩌면 인간이 저들의 공간을 차지하여 갈 곳이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가끔 늑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들에 물을 대러 나가면 늑대가 무리를 지어 사람을 홀리곤 했다고 하셨다. 키높이를 훌쩍 훌쩍 뛰어넘었다고도 하였다.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겁먹은 얼굴로 늑대가 무섭지 않으셨냐고 여쭈었다. 사람이 두발로 서있으면 늑대는 절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살던 집에서도 밤늦은 시간 늑대의 울음을 들은 듯하다. 차가운 바람이 가지를 스치고 멀리서 '우우우' 늑대가 우짖으면 동네 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번에 짖어 댔다 때만 하여도 우리는 늑대와 함께 삶의 공간을 공유하여 살지 않았나 싶다. 안타깝게도 이제 야생에서 더 이상 늑대를 볼 수가 없다.
탐욕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의 공간을 앗아간 것이나 사람들이 늑대의 공간을 앗아간 것이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들만 살겠다고 바둥대는 인간의 습성은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당연한 것인 양 하지만 언젠가 우리 인간들조차 갈 곳을 잃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살아갈 방도를 찾아 꼬리를 내리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늑대의 모습이 미래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