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줄탁은 안으로부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2. 4. 1. 22:46

  줄탁은 안으로부터 시작된다.

  알 속에서 새끼 스스로 껍질을 깨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어미는 어쩔 도리가 없다. 무작정 깨었다가는 알 속의 병아리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완성된 새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와보지도 못하고 고사(枯死)하기 마련이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노력도 없이 누군가 와서 도와줄 것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시도를 할 때 생각지도 않았던 도움이 따라온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겨난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에 순응하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나려 애쓰는 사람은 하늘이 돕고, 이웃이 돕는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십여 년 전 친구는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 사장 아래 두 번째 서열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자진해서 사표를 쓴다. 동료와 후배를 위해 길을 터주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직장 근처에 세를 얻어 조그만 호프집을 열었다. 정보통신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개발 관리자로 일하던 그였지만 앞치마를 둘러매고 골뱅이 무침과 맥주병을 날랐다.

알아주는 국립대학을 나와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통신 회사에서 일했던 화려한 경력은 잊은 지 오래였다. 친구에게 체면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호프집 일은 새벽이 되어야 끝이 났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자녀에게 비칠 아빠의 모습을 상상했다. 부정적이었다. 운영하던 호프집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돌 장사를 시작하였다. 중국에서 석재를 들여와 가공한 후 건축업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는 주로 머리를 쓰면서 일했다.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석 자재를 수입 가공 판매하는 일은 육체적인 노동이 따랐다. 야적장에 돌을 쌓고 또 그것을 차에 실어 내보내야 했다. 만나는 고객들도 전혀 달랐다. 건설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언어와 금융계통에서 일하는 고객들의 언어는 판이했다.

친구는 부단히 고객에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고객들의 필요에 다가섰다. 작은 주문일지라도 온 힘을 다하여 응했다.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휴일도 없었다. 이러한 성실성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내까지 합류하여 사업을 도왔다. 석재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째, 지금은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전력을 기울인 노력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영주의 저택에 젊은 정원사가 새로 들어왔다. 영주는 새로 들어온 청년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흡족해했다. 영특해 보이는 청년이다 싶었다. 어느 날 영주는 정원사로 들어온 청년이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뭔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궁금해진 영주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았다. 영주는 청년을 불렀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무슨 일을 그리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건가?”

, 정원에 있는 화분을 조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꿈이 조각가이거든요.”

청년은 혹시나 자신의 행동이 영주를 화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떨궜다.

아하, 이 보게 걱정하지 말게나. 나는 자네의 조각솜씨에 감탄해 하고 있었다네. 꿈을 이룰만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것 같군. 자넨 틀림없이 훌륭한 조각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청년의 재능과 열정을 높이 산 영주는 그를 미술학교에 보내 전문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미술에 정식으로 입문한 청년은 훗날 시스티나 대성당의 벽화를 남긴다. 청년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이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이 있을 때 세상 밖의 어미는 때를 맞춰 껍질을 깬다.

*덧붙임: 글의 마지막 부분 정원사의 이야기는 ‘5년 후 내 인생’(하우석 지음/다온북스)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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