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질리언스 (Resilience)

리질리언스 (Resilience)

이택희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에는 가는 곳마다 숨어있는 고수가 있다.’는 뜻으로 유홍준 교수가 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6권의 부제이기도 하다. (중략)

화가 피카소가 유명해지자 중년 부인이 찾아와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피카소는 초상화를 5분 만에 그려줬다. 스스로 자신이 미술 분야의 고수라고 믿었던 그 중년 부인은 성의 없어 보이는 피카소에게 돈을 조금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초상화를 5분 만에 그리기 위해 나는 30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물리적인 시간과 눈에 보이는 노력을 기준으로 삼는 하수의 평가로는 절대 고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만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략)> 고영섭 씨(오리콤 사장)가 모 신문에 게재한 글이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한두 해하는 것쯤이야 누구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십 년이고 이십 년 꾸준히 해내는 건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올랐다 하더라도 유지하기 어렵다.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끈기 있게 견디는 힘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영어의 어휘 중 이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견디는 힘, 튀어나오는 힘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살면서 견디는 힘이 있어야, 탄성(elasticity)이 있어야, 쾌활함과 발랄함(buoyancy)이 있어야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다.

캐나다 출신의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만 시간 법칙을 주장했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운동이든, 예술이든, 공부든, 일이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만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 하루에 세 시간을 투자했을 때 십 년이 걸리고 하루에 여덟 시간을 투자했을 때 4~5년 걸리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을 하루같이 세 시간 이상 집중하여 노력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기에 능력을 발휘하며 전문가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요 당당히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야구선수 류현진이 LA 다저스와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하다. 받게 될 연봉은 40억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류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만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연습했고, 실전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명문구단으로부터 구애를 받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빌빌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홈런 한 방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 왔던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본에서 활약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소속팀의 2012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몫했다. 연봉 8억을 받으며 이름값을 해냈다. 성적에 따라 지급하는 옵션 3억도 추가로 받았다.

이미정 씨는 아홉 살이 되던 해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을 마치기 전부터 모 교향악단의 단원이 되어 이십 년 동안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 악단의 제1 바이올린 파트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국외에서 유학한 젊고 유능한 연주자들이 국내로 들어와 활동하는 상황을 참작하면 순수 국내파로서 명성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기가 만만치 않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소임을 잘 감당하고 있다.

이씨가 모교로부터 겸임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이다. 연주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닮고 싶은 선배요 스승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삼척동자도 안다. 꾸준한 정진을 통하여 스스로 행복을 느끼며 대중에게 기쁨을 주는 연주자요 스승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십 년은 공부해야 자리가 잡히고, 이십 년은 해야 이름을 날리고, 삼십 년을 해야 도인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몸담은 사회 속에 이런 영웅이 한둘 아니다. 그들과 함께 오늘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l  유현진 선수는 2012년 12월 10일 LA 다저스팀과 6년 3,600만 불, 옵션 포함 최대 4,200만 불에 계약을 체결했다. 연봉으로 따지면 600만 불(옵션 제외, 한화 65억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