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걸레질의 기적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2. 12. 5. 15:48

걸레질의 기적

 

내가 주원(본명 문준원) 이라는 배우를 눈여겨보게 된 건 그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유명인이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잘생기고 몸매가 날씬해서도 아니다.

그를 눈여겨보게 된 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게 된 이후이다. 1987년생이니 아직 만으로 스물여섯이 채 되지 않은 애송이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젊은이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철학을 들으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나는 그의 솔직함에 매료되었다.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청년의 이야기가 무척 신선했다. 

알고 보니 그는 어느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젊은이였다제빵왕 김탁구, 오작교, 각시탈 등의 프로그램에 조연 또는 주연으로 출연하여 연기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연기예술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 1학년 때 학교의 극장에 나가 매일 아침 걸레질을 했다. 객석에 있던 한 선배가 누구냐고 물었다. 곧바로 노래를 시켰다. 노래를 들은 선배는 모 극단의 오디션에 응해보라고 했다. 내키지 않았으나 선배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예비 오디션에서는 떨어졌고 정식 오디션에 합격했다. 만 스무 살에 뮤지컬 알타보이즈(ALTARBOYZ)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처음 주원을 보았을 때 선배들은 어디서 놀다가 굴러 들어온 친구’쯤으로 여겼. 하지만 두 달 동안 묵묵히 걸레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걸레질 때문에 주역이 되긴 했지만, 자신은 한없이 작아 보이고 선배들의 능력은 출중해 보였다. 주눅이 들었다. 이 곳 저곳에서 실수하고 더듬거렸다.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었다.

이를 눈치챈 형들은 "앞으로 네가 리더라고 생각하고 연극을 이끌어가라.”고 했다. "사생활에서도 우리를 리드해 주면 좋겠다."는 말로 용기를 주었다. 이 말에 힘을 얻은 그는 성공적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데 기여했다.

스프링 어웨이커닝(SPRING AWAKENING)이라는 뮤지컬에서 주원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이 사고를 당하거나 몸이 안 좋을 때 역할을 대신할 언더스터디(understudy)였다공연장에 갈 필요도 없었지만, 항상 제일 먼저 나가 걸레를 잡았다배우와 스텝들이 안 나와도 되는데 왜 나오느냐?”며 의아해했다.

하루에번씩은 대본을 읽었다. 역을 맡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습할 때면 두꺼운 노트를 들고 이 층 객석에 올라 메모를 했다. 주역을 맡은 형이 하는 공연을 보며 받아 적었다. 음을 외우고, 안무를 배우고, 연기를 해보는 등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고 익혔다. 250번의 공연 중 그래도 몇 번은 무대에 설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난데없이 기회가 찾아왔다. 첫 리허설 날 주인공인 형이 다친 것이다. 제작사, 투자자, 조명과 음향 등 전 스텝이 참여하는 중요한 리허설이었다. 주원이 대타로 무대에 섰다. 미리 준비해둔 탓에 별 탈 없이 리허설을 끝낼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랄 일이었다. 총연습 이후 그는 주역으로 발탁되어 150회의 공연을 담당하게 된다. 처음 100회는 원래 주역을 맡았던 형이, 이후 150회는 주원이 주역을 맞기로 결정되었다.

자기 일이라 여기며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걸레질을 하니 주변 사람들이 눈여겨봐 주었다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을 수 있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 비쳤다. 주역 배우가 하는 연기를 보고 배웠다.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온 힘을 다하리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거듭하자 기회가 왔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험한 일일지라도 묵묵히 감당해 내는 것. 남이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당장은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앞날을 기대하며 꾸준히 준비하는 것, 그러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오는 것!

동화와도 같은  '걸레질의 기적을 체험으로 전해준 젊은 배우 주원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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