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미처 하지 못한 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3. 2. 2. 05:51

미처 하지 못한 말

 

한국에 있을 동안 밥 해대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허리가 아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아프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제가 아팠더라면 죽는시늉을 하면서 힘들다고 아우성쳤겠지요. 당신께서 아프다고 말씀하셨을 땐 어느 동네 개 짖는 소리 듣는 듯했습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하셨을 때도 마지 못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신 아들이 아프다고 했다면 아마도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아파하시며 안타까워하셨겠지요

연골이 닳아 없어지면 허리가 끊어지는 듯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습니다. 캐나다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가족인데 지금까지도 가까이 지내니 이십 년 지기가 되어갑니다. 요즈음 그 댁 안주인이 허리가 아파 굴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허리뼈가 일 센티미터 이상 어긋나 누워만 지냅니다. 내외가 일하는 사람 서너 명을 데리고 세탁공장을 하는데 아내가 아프니 남편 혼자 힘들게 일하고 있지요. 허리 아픈 게 보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 가정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웃은 오십 대 초반인데 허리가 아파 며칠 동안 꼼짝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한둘  아니니 허리 아픈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아프다고 하셨지요. 이십 분 일하시면 이십 분은 반듯이 누워 쉬어야만 아픔을 면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런 불편한 몸으로 새벽마다 일어나 찬거리 국거리 장만하시고 밥을 해대셨습니다잠들어 있는 아들이 깨기라도 할까 봐 까치걸음하시며 식사 준비를 하셨습니다. 된장찌개와 국 데우기를 몇 차례 반복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식이 일어나 식탁으로 나올 때까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데우기를 반복하셨습니다. 팔순 어머님께서 아픈 허리 견디시며 수고하시는 데 아들은 제 잠 챙기기에 바빠 당신 힘드신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시금치무침, 멸치땅콩볶음, 김치찌개, 고등어구이, 깻잎무침, 된장찌개, 삶은 양배추에 생된장, 김구이 등 한상 가득 차렸으면서도 오늘은 또 뭐하고 먹을래, 하시며 입에 맞을까 염려하셨지요.

나이 든 어른들은 음식 장만 하기를 싫어하시고 또 젊을 때 만든 음식보다 맛이 없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 만났던 이웃도 그랬답니다. 칠십 대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음식은 도무지 맛이 없는데도 말씀을 못 드리겠다고. 그래서 아예 손을 대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찬을 주문해서 먹어야겠다는 하소연이 무척이나 생경했습니다도무지 상상 할 수 없었거든요.

어머님께서 준비하시는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과도 비교되지 않을 천하제일의 밥상입니다.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견줄 수 없지요. 그런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 어머님은 병치레가 잦으셨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일찍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수근댔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팔순이 되도록 건강하시어 중늙은이 된 자식에게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년 수가 제법 되어서인지 이제는 아내도 음식을 곧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음식보다 맛난 음식이 세상에 없습니다. 허리가 아프면서까지 나물을 다듬고 삶아 갖은 양념에 조근조근 무쳐 내어놓으시는 어머니. 밥상을 차리시며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에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밥은 안 해주셔도 좋으니 제발 오래오래 곁에 계셔만 주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신께서 해주시는 밥보다 맛있는 밥은 세상에 없습니다.

201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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