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한밤중의 소동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3. 12. 13. 07:53

전날 먹은 연어회(smoked salmon) 때문이었을까. 온몸이 간지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심해졌다. 반점이 솟아나더니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붉게 부어오른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엉덩이는 물론 팔과 다리 심지어 손바닥까지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다.

친구 아버님은 오십 대에 회를 드시고는 며칠 만에 세상을 뜨셨다. 비브리오 패혈증이라 하였다. 혹 나도 돌아가신 친구 아버님처럼 비브리오 균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브리오 균에 감염되면 위에서 산이 나와 쓰리고 아프단다. 주기적으로 속이 쓰린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피부에 생긴 붉은 반점에서 금방이라도 진물이 흘러내릴 듯하다. 40대에서 50대 사이에서 감염이 잘 된다는 설명도 마음에 걸린다.

병원을 찾았다. 늘 그렇듯 응급실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피를 멈추느라 코를 움켜쥔 아주머니, 다친 팔을 부여잡고 아픔을 참는 고등학생, 눈가에 긁힌 자국이 선명한 어린아이, 놀란 눈빛을 하고 휠체어에 앉은 잠옷 차림의 유대인 할머니까지. 할머니 주변은 딸과 손자,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로 한 부대를 이루고 있다. 환자 한 명에 한두 명, 많게는 서너 명의 보호자가 있으니 북새통 일 수밖에. 사람들이 꿈나라에 있을 시간에도 병원 응급실은 이렇듯 늘 붐비나 보다.

등록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바닥을 비롯한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꼬집고 비비고 비틀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이 상태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지난번 신장결석(kidney stone) 때문에 응급실을 찾았을 때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0 30분에 들어와 새벽 2시가 되어도 불러줄 생각을 않는다.

원래 사람은 이렇게 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까짓 뭘 좀 잘 못 먹었다고 이토록 전신이 가렵고 부풀어 오르다니. 몇 시간 전에만 해도 커피점에 앉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병인 줄 알고 수술을 받다 갑자기 돌아가신 젊은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 또한 그 목사님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일전에 있었던 사고도 떠오른다.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온 차에 들이 받혀 바로 앞에 멈춰서 있던 차가 박살이 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고 직후 운전자는 의식을 잃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 생각이 난다. 후배 성환은 2004년 아내와 아들, 장모님과 함께 태국 푸켓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해 본인이 경영하던 회사의 사업이 잘되어 자축도 할 겸 일하느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던 가족과 오붓이 시간도 보낼 겸 떠난 여행이었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가족 앞에 난데없이 몰아닥친 쓰나미는 본인과 장모님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제법 잘 나갔던 친구 진배는 오십 대 초반 췌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원각은 모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며 동기 모임의 감초 역할을 하다 설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오늘 죽어도 억울할 일은 없겠다 싶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았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자녀도 다 자라 이제는 도움이 없어도 살 수 있을 터. 얼마간 보험금이라도 있으니 아내 역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연로하신 어머님에 앞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뇌종양 수술 후 살만해 졌다고 스스로 교만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절대자에게 맡기기보다 무엇이든 혼자서 하려고 발버둥 친 것은 아니었는지. 큰 아이 학비에 돈이 많이 들어은근히 걱정도 했었다. 좋은 일거리가 주어졌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열정을 불사르지 않은 것도 마음에 걸린다.

상념과 가려움에 정신을 놓고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한쪽에서 타이치 리라 외치는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온다. 자세히 들으니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웠다. 그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했다. 팔을 걷어붙여 흉측하게 부어오른 부위도 보여주었다. 챠트를 적어가던 간호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의사에게로 달려간다되돌아와서는 주사를 놓아주며 약 한 알을 삼키라 한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잠이 쏟아진다한 시간 남짓 잤을까. 솟아올랐던 반점들이 스르르 가라앉는 듯하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간지러움도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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