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3. 12. 17. 14:06

두 소년이 해변에서 놀다 지쳐 모래밭에서 잠이 들었다. 그중 한 소년이 미지의 섬에서 어느 부자 노인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노인의 정원에는 동백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고 한 동백나무 밑에는 황금이 가득한 단지가 묻혀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소년은 곧바로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게 꿈이라는 게 정말 안타까워.”

꿈을 꾼 소년의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순간 마음속에 이상을 향한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는 꿈을 꾼 소년에게 제안했다.

너 이 꿈 나한테 팔지 않을래?” 꿈을 산 소년은 곧바로 그 섬을 찾아 길을 떠났다. 천신만고 끝에 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정말 부자 노인이 살고 있었다. 자진해서 노인의 하인이 되었다.

소년은 노인의 정원에 동백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다. 정성을 다해 돌본 덕분에 동백나무는 매년 탐스러운 꽃을 피웠고 노인은 동백나무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 소년은 노인이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일했다. 노인은 소년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소년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꿈을 샀던 소년은 큰 부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반면 친구에게 꿈을 판 소년은 계속 꿈만 꾸면서 세월을 보내다 나이가 들어버렸다.’

꿈 이야기를 하는 소년과 나 자신이 무척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렁설렁 일하면서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고, 번민과 고뇌도 없이 감동을 주는 글이 나오기를 바라고, 땀 흘리는 수고도 없이 좋은 점수를 바란다. 나이가 들었다고, 영어를 못한다고 핑계하며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캐나다로 온 분 중에 영어를 잘하는 분들이 얼마든지 계신다. 칠십을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끊임없이 영어로 글을 쓰시고 시를 지으신다. 젊은이들을 대신하여 법정 통역을 하는 선배님도 계신다. 그런 분들이 계심에도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한국에 태어나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핑계하고 자위하며 멍청히 앉아있다.

막 일을 시작했으면서도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며 스스로 그렇게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밤잠을 자지 아니하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여 얻은 지식과 경험을 하루아침에 얻겠다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가 아님에랴.

어쩌면 바닥에 있으면서도 바닥에 있음을 인식조차 못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내게 바닥은 엄연한 현실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여기서 돌아서기만 하면 된다. 바닥을 탓하며 꿈 이야기를 해댄다고 나아질 건 없다.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니 감사하다. 그 꿈이 결코 허황한 것이 아님을 나는 믿는다. 누가 처음부터 날고 길 수 있었을까. 쉼 없이 부딪히고 넘어진 결과 한 걸음 두 걸음 걷고 되고 달리게 되었음은 자명할 일 일터. 다가오는 2014년은 꿈을 산 소년처럼 성실히 땅을 파고 나무를 심으며 살련다. 심긴 나무에서 여린 싹이 돋아나고 잎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리.

바닥에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확고하게 걷고 달리게 될 그 날을, 날고 길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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