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사랑을 삼키다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3. 12. 23. 22:49

그놈 참 볼수록 신기하게도 생겼다. 길게 난 수염은 몸통 길이만 하고 양쪽 손에 들린 집게는 공포영화에서 본 가위손 인간만큼이나 무시무시하다. 힘센 집게에 집히면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겠다.

신기하게도 한쪽 집게에는 이빨이 있다. 이빨이 집게손가락에 달려있다니. 잔 발은 또 왜 그리 많은지. 하체보다 상체가 더 발달해 있다. 바다 밑을 다니며 죽은 고기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생긴 모양이 우스꽝스럽다. 창조주의 유머가 녀석을 있게 한 걸까?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모아 못난이 경연대회를 연다면 한 번쯤 겨루어 볼만도 하겠다. 

녀석은 느린듯하면서도 빠르다. 걷기도 하고 헤엄치기도 하는데 그 점은 나와 비슷하다. 녀석은 물속에서도 살 수 있지만 나는 물속에서는 살 수가 없다. 이놈은 물 밖으로 나와도 며칠씩 살아있다. 하지만 나는 물속에 들어가면 한 시간을 못 견딘다. 그런 면에서 녀석은 나보다 낫다.

년 전 장광의 화백 집에 초대를 받았다. 화백은 최상급 스테이크를 구워 일일이 앞 접시에 놓아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텃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채소에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이날 화백은 핼리팩스에서 공수해온다는 녀석들을 화제에 올렸다. 상자째 가져와 며칠씩 보관하여도 죽지 않고 살아있더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나도 꼭 한번 만나보기를 원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잔인하게도 펄펄 끓는 물에 녀석을 집어넣으려 하였다. 앞다리를 길게 뻗어 들어가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쑥 내민다. 억지로 밀어 넣으려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바라보던 둘째는 불쌍하다며 통곡을 한다. 우는 딸을 바라보는 마음도 편치가 않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버티며 엉덩이를 빼는 녀석을 바라보기도 서글프다. 괜스레 눈물이 글썽여진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어 강제로 녀석을 끓는 물에 집어넣어야 하나.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 냄비를 탓할 수밖에.

예전엔 죄수들에게나 주던 하찮은 식 재료였다고 한다. 지금은 고급식당에서 값비싸게 팔리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조리 방법이 발전했다나 어쨌다나. 끓는 물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갈색이던 몸이 붉은빛으로 변하였다. 좀 전 뜨거운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 과연 먹어 치울 수 있을까.

녀석과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주어졌다. 둘째 아이가 남자친구와 시간도 보낼 겸 부모님도 뵈올 겸 핼리팩스를 다녀왔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토론토로 돌아가는 딸아이에게 한 상자를 들려 보내셨다. 상자를 열자 덩치 큰 다섯 녀석이 무슨 중대한 회의라도 하는 양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해보았다. 두 녀석은 친한 친구에게 보내고 다른 한 녀석은 가까이 사시는 선배님께 전해드리자. 아내가 좋아하는 젊은 목사님 내외분께도 드리고 매주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리더에게도 드리자.

생각해보니 친구는 너무 멀리 있을뿐더러 가족이 여러 명이니 붙일 곳도 없겠다 싶다. 가까이 사시는 선배님께 한 녀석만 드리기도 뭣하다. 목사님 가족도 네 식구이다. 촌장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웃에 키가 크고 잘생긴 집사님 가족 생각도 난다. 애라 모르겠다. 일단 먹고나 보자.

집게를 가져와 껍질을 부수고 살점을 발라냈다. 쫄깃한 속살을 자근자근 씹는다. 자르르 입안 가득 즙이 고인다. 옆에 놓인 백색 포도주 잔으로 눈길이 간다. 창밖은 온천지가 하얗게 덮여있다. 녀석을 통하여 나는 핼리팩스로부터 전해져 온 사랑을 먹었다.

201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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