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4호 법정 150114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5. 1. 15. 11:41

판사의 자리는 제일 위쪽에 위치해 있다. 높다란 의자가 위엄을 나타낸다. 아래로 서기의 책상과 컴퓨터가 놓여있고 더 아래로 서기보조의 책상과 의자, 마이크가 놓여 있다. 말하자면 삼단인 셈이다.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서기는 법정에 출석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끄고 모자를 벗으라고 일러준다서기보조(steward로 불렸다)가 피고와 함께 판결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서기보조 옆에는 경찰관 두 명이 제복을 입고 앉아 근엄한 자세로 대화를 나눈다. 저녁에 벌어진 아이스하키 경기에 대한 이야기일까.

서기가 나가더니 판사 대동하고 나타났다. 여자 재판관이다. 목까지 오는 흰 셔츠에 검은 법복을 입고, 왼쪽 어깨에는 파란 휘장을 둘렀다. 소곤거리던 소리가 일제히 가시고 조용해졌다.

엄숙한 분위기. 서기가 큰소리로 말한다..

서기:일동 기립

판사가 자리에 앉는다.

서기: 모두 자리에 앉으셔도 좋습니다.

웅성대는 소리가 난다. 판사가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른다.

서기: 4호 법정 심리를 시작합니다.

순서에 맞추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내 순서가 되었다.  

판사: 피고는 자신의 이름을 말 하시오.

피고: ~희 리 입니다.

판사: 피고는 유죄를 인정합니까? 유죄를 인정하면 판결까지 가지 않고 부과된 325(법정 부대비용 포함)대신 240불을 내는 것입니다.  

피고: 인정합니다.

서기가 결정문을 낭독한다.

서기: 피고는 2014 8 13일 저녁 7 31분 베더스트와 하이웨이 세븐에서 빨강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갔습니다. 이는 도로교통법 207 3항과 207 4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판사: 법정 최저 벌금 240(법정 부대비용 포함)을 선고합니다. 의의 있습니까?

피고: 없습니다.

단호하고 엄숙하던 판사의 목소리가 따뜻하게 바뀐다.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걱정하듯 묻는다

판사: 240불은 낼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좀 더 깎아나 줄 것이지. 법정 최저벌금 금액이 200불이라 더 이상 조정은 안 된다고 서기보조가 미리 알려주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피고: .

판사: 벌금을 내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겠습니까?

피고: 90일이면 되겠습니다.

판사: 90일 안에 내도록 하십시오.

판사: 더 할 말은 없습니까?

피고: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판사: 가도 좋습니다.

서기보조가 벌금 지급명령서를 작성하여 건네준다.

 

한국과 캐나다 통틀어 처음으로 법정에 서보았다재판장에 간 덕에 그나마 벌금은 다소 줄일 수 있었다수납창구에서 바로 내고 나왔다. 지급기한을 연기해준 성의야 고맙지만 낼 것 내고 잊고 싶었다. 여판사는 얼굴이 갸름하고 날씬한 몸매로 매력 덩어리였다평소 생각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훗날 내가 죽어 또 다른 법정에 서면 오늘 같이 예쁜 여판사를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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