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수도원의 하루 150113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5. 1. 15. 02:39

<아침 정경>

소근소근 내려앉는 아침 햇살

새근새근 잠든 아가의 고운 얼굴

 

<아침 식사>

치즈와 햄, 토스트, 요구르트, 커피, 사과 주스, 과일-딸기, 파인애플, 멜론- 베이글과 크림치즈, 참 많이도 먹는다. 천천히 음미하며 씹는다. 말하지 않고 먹기만 한다. 음식에 집중한다. Here and Now, 하나하나 맛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 하나 꼽으라면 침묵수련 가운데 만나는 피커링 만레사 수도원 식당을 꼽겠다.

 

<만찬>

접시 안에서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황금빛 들녘 곡식이 춤춘다

그물 끌어올리는

어부의 낯빛이 붉다

쪼글 할아버지

굽은 허리 억지로 펴

하늘을 본다

비라도 오려나 봐.”

 

길게 늘어선 포도밭

포도가 여문다

물기 빠지고 쪼그라들어

건포도가 되었다

한여름 뙤약볕에

누런 호박 익어가고

땅속에선 양파가 영글어간다

붉은 당근 굵기를 더한다

 

마술 피리 한자락에

농부의 땀방울이

어부의 노랫가락이

접시에 한가득

비릿한 바닷내음

풋풋한 흙내음 솔솔 풍긴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들려온다

 

<디저트>

솜털처럼 부드럽게 혀에서 녹아

입안으로 잦아드는 달콤함

은은한 계피 향

안은 노랗고 겉은 주황빛 나는

앙증맞은 한 조각

 

<욕심>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은 방과 침대 하나 책상 하나면 충분하다. 먹을 것 또한 무에 그리 많이 필요하겠는가. 어디 가서 입에 풀칠 못 하겠는가. 그러면서도 남과 비교하여 자꾸만 더 가지려 한다. 버릴 것 버려야 가벼워질 터인데... 마음에 있는 욕심 버리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니.

 

<숲에 내려앉는 어둠>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눈 덮인 숲은 적막하다

고요

숲은 또 그렇게 잠들어간다

한밤중이면 나무들끼리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까

 

깊어가는 겨울 밤

땅에 묻은 김칫독

막 꺼낸 김치 쭉쭉 찢어 

모락모락 김 나는

하얀 쌀밥 밤참 나눠 먹던

식구들

 

나무도

밤참 먹을 때 오손도손

재미난 이야기 나눌까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옆에 앉아

눈 덮인 숲을 바라본다

숲은 말이 없다

 

<석양>

하얀 눈,

차가운 공기,

타오르는 불꽃

만레사 수도원의 저 나무는 무엇을 보았는가.

 

식당 앞 좁은 벽엔 예수회 수도원답게

프란체스코 님의 사진이 걸렸다.

 

 <침묵수련 vs. 카리브 해>

벽난로 옆에 앉아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평안히 앉아 있으려니

일주일 동안의 캐러비언 여행이

하나도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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