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체면 151012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5. 1. 13. 07:58

어릴 적 어머님과 함께 친척 집을 방문하기라도 하면 친척 분들은 대개 밥은 먹었느냐고 먼저 물어오셨다. 어머님 대답은 한결같았다. "방금 먹고 왔다." 였다. 배에서꼬르륵소리가 나도 늘 같은 대답이셨다. 정직하게 먹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으나 꾹꾹 참아야 했다. 먹고 싶은 표정만 지어도 눈총을 주셨으니까. 나중에 혼날 줄 알라는 무언의 경고였으니까. 다른 때는 늘 정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왜 이런 때는 정직하지 않으셨을까. 평소 남자는 아파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슬퍼도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다.

이삼백 명이 모인 자리였다.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갖춘 미모의 절친이 피아노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치고 힘들어도 의연한 척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 듣고 보니 내 얘기였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가 볼세라 들썩이는 어깨를 가라앉히느라 애를 썼다. 얼굴이 벌게졌다. 삼사 분 후 떨구었던 고개를 들고 보니 앞에 있던 두 아저씨도 눈시울이 불그레했다. 아버지 보시고 한 말씀 하셨겠다.

 

살다보면 아프고 힘들어도 의연한 척해야 할 때가 얼마나 잦은가. 그때 어머닌들 왜 울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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