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을 밟는다. 속도를 높여 십여 분 밟는다. 호흡이 가빠지며 땀이 배어 나온다. 이마에 송송 맺힌다. 맺힌 땀방울은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얼굴 가득 흘러내린다. 눈을 뜰 수가 없다. 수건으로 얼굴을 씨익 훔친 뒤 장단지에 힘을 싣는다. 흘러내린 땀이 옷을 흠뻑 적신다. 후줄근해진 천이 등에 척하니 달라붙는다. 몸속에 쌓인 찌꺼기도 배어 나오는 느낌이다. 허벅지가 뻐근해 오지만 정신은 초롱초롱 더 맑아진다. 상념의 노폐물도 함께 나오는 가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을 게다. 몸보다 배나 크고 무거운 자전거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처럼 타보고 싶었다. 받침대를 젖히기조차 어려웠다. 몇 걸음 앞으로 가기에도 힘에 부쳤다. 한두 걸음 끌기 시작하여 넘어지기를 수십 번, 넓고 긴 과수원 길까지 끌고 나갔다. 봄도 제법 무르익어 아카시아 향기가 사방에 진동했다. 달구지 매달고 느릿느릿 걸어가던 황소가 내갈긴 호떡 같은 똥이 길가에 널브러져 말라가고 있었다. 여러 번 밟히어 납작해졌다. 말똥구리 말 굴리며 지나갔다.
자전거 사이로 발을 넣어 앞으로 나가려 애써보지만, 이리저리 처박히기에 바빴다. 넘어지면 무게를 못 이겨 세우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힘을 다해 일어나려 해도 다시 넘어졌다. 모래흙에 짓눌린 정강이에 봉숭아 꽃이 피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검은 딱지가 되었다. 딱지 떨어진 자리가 짓이겨지고 아물기를 대여섯 번할 즈음 크고 육중한 자전거는 푸른 물살 가르는 통통배처럼 쑥쑥 나아갔다. 양산 쓰고 지나가던 영주 엄마가 제 몸보다 배나 큰 자전거를 엿장수 엿 주무르듯 한다고 칭찬해주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자전거 타기를 배우셨을까. 장날이면 아버지의 자전거는 시장 어귀에 세워져 있었다. 천막을 둘러 만든 대폿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버지는 나지막한 통나무의자에 앉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셨다. 삶은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순댓국 한 술에 한 잔 더 걸치면 너털웃음이 절로 나왔다. 부산하던 장이 시나브로 한산해지고 해가 서편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갈 때 꽁치 대여섯 마리 핸들에 걸고 양파 한 자루 짐칸에 실은 뒤 집을 향해 페달을 밟으셨다.
연분홍 투피스에 뾰족구두 신은 새 며느리 뒤에 태우고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실 때면 입가에 웃음이 눈 밑에 걸리지 않았을까. 넘어져 낭패라도 당할까 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리에 힘을 실었으리라. 어린 손자 손녀 태워 동네 한 바퀴 도실 적엔 휘파람 소리도 유장하였으리.
친구는 내게 자전거 타기를 권했다. 나이 들어 내로라할 길이 바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리가 튼튼해야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고 아내에게 사랑받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무리하게 달리는 것보다 자전거 타기가 백번은 나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친구의 조언도 조언이려니와 생각해보면 삶에 있어 자전거와는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자전거 한 대가 마당 한 편에 남루도 걸치지 않은 채 쓰러져있다. 반쯤 내려앉은 지붕과 떨어져 나간 흙벽을 바라보며 누워있다. 바퀴는 엿가락 휘어지듯 휘어져 있고 핸들은 꺾이어 녹슬어간다. 비가 눈으로 변하기를 몇 차례 그냥 그대로 있다. 자전거에 녹이 더해지듯 아버지의 몸도 야위어만 갔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화장실 출입도 어려워지셨다. 부축해드리려 해도 기어이 손사래를 치셨다. 약해진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을 것이다. 어느 날 고물 장수가 와서 손수레에 뼈만 앙상히 남은 자전거를 싣고 가버렸다.
손주들이 태어나면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고 싶다. 아이들의 키가 자라고 자전거의 보조바퀴가 떨어지고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평원을 질주할 터이다. 비바람 맞바람 뚫고서 세차게 내달릴 것이다.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유유히 창공을 배회하는 독수리처럼 날 터이다. 지구를 돌아 우주에 이를 터이다.
자전거를 탄다. 비록 막힌 공간이지만 페달을 밟으며 엑스터시를 느낀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기쁨을 만끽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의 자전거도 추억해본다. 페달을 밟으며 들녘으로 나간다. 아물아물 아지랑이가 보인다. 언덕 아래 굽어진 길도 보인다. 길은 길게 뻗어있다. 다리에 힘을 싣는다. 땀이 비 오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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