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기도하는 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6. 12. 22. 00:53

 세밑이다. 지난여름 유난히 덥더니 겨울 날씨 또한 매섭기 짝이 없다. 12월 들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수차례 이어지고 있다. 혹독한 겨울 날씨에 갈 곳 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자신이 너무 호사스럽게 살고 있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보지만 늘 부족하기만 하다.

 올 한 해도 많은 분의 도움으로 살아왔다. 공적인 일에나 사적인 일에 발 벗고 나서 도와주신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손으로 꼽자면 열 손가락을 열두 번이나 더해야 하지 않을까. 도무지 힘든 형편임에도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주셨다. 자신을 위한 일에는 짬을 못 내 쩔쩔매면서도 남을 돕는 일에는 기꺼이 시간을 내셨다.

 기도하는 손이 그려진 엽서가 놓여있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보아 남자의 손으로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마디는 굵어져 있고 잔주름투성이다. 얼핏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당신의 손등이 뱀 허물 벗어 놓은 것처럼 험하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느라 스스로 돌볼 여유가 없으셨던 것이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밭일을 하셨고 사시장철 부엌일에다 빨래까지 도맡아 하셨으니 거칠 수밖에 없었다. 겨울에는 부르터 쩍쩍 갈라지기까지 하였다. 가끔은 물이 나빠 그렇다며 농사만 지으며 살아야 하는 처지를 한탄하셨다. 맏이인 나를 말동무로 생각하여 그러시지 않으셨을까. 그런 어머님의 부지런함 덕분에 네 형제자매가 하나같이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나마 내밀며 살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남편마저 천국으로 떠나보내고 아침저녁 자녀들을 위한 중보로 두 손 모으신다.

 생각해보면 어머님의 손만이 아니다. 수많은 신앙의 동지들이 수시로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응원해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교회 식구들이 그랬고, 친구들이 그랬다. 피붙이들도 무시로 기도의 향을 피워올렸다. 끊임없이 중보하는 간구를 들어주셨기에 올 한 해도 대과(大過)없이 지낼 수 있었으리라.

 언젠가 기도하는 손(praying hands)’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두 친구가 화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우며 그림 공부를 했다고 한다. 비용이 많이 들어 두 사람이 함께 공부를 계속하기란 불가능하였다. 두 친구는 서로 상대방의 재능을 살려주겠다고 다투었다. 결국엔 한 친구가 식당일을 하여 다른 친구를 돕기로 하였다. 친구의 도움으로 다른 한 친구는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화가로 성공한 친구가 꿈을 포기해 가며 자신을 도운 친구를 찾았을 때 마침 기도를 하고 있었다. “주님 저의 손은 이미 일하다 굳어져 그림을 그리는 데는 못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몫을 친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소서.” 이 모습을 본 친구는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리며 정성스레 스케치하였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erer)기도하는 손(praying hands)’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뒤러에게 친구 프란츠 나인스타인(Franz Knigstein)의 기도하는 손이 있었던 것처럼 내게도 수많은 기도의 손길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기도 덕분으로 올 한 해 두 발로 든든히 설 수 있었다.

 2017년 새해를 맞으며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나의 손 또한 기도하는 손이 되어지는 것이다. 프란츠 나인스타인의 희생과 기도처럼 나 또한 주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웃의 성공과 안녕을 바라며 두 손 모으는 시간이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기를 희념(希念)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1508년 종이 위에 브러시와 잉크, 29 X 20 cm, 독일 뉘른베르크 박물관 소장/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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