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잘 가꾸는 신 선배님 댁에 다녀왔다. 뒤뜰에 잔디를 걷어내고 텃밭을 만들려고 계획했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선배님 댁이었다. 앞쪽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경사가 져 장관이었다. 선배님은 CN(Canada National Rail)에서 수퍼바이저로 일하시다가 정년 퇴임하신 후 주로 집에서 정원을 가꾸며 지내셨다.
지붕과 나무를 연결하여 만든 베드에는 호박과 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한쪽에는 포도송이가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도라지며 부추 양귀비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 하였다. 씨앗을 받아 직접 싹을 틔워 키운 토마토도 탐스럽게 익어갔다. 아들의 결혼식을 정원에서 해도 될 정도로 잘 가꾸셨다. 년 전 100명 이상의 하객을 초대하여 결혼식과 피로연을 하였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단다.
선배님은 아침이면 아내와 함께 집주변을 산책하곤 하셨다. 산책을 끝낸 후 가까이 있는 맥도널드에 들러 커피를 마시곤 하셨는데 그곳에서 두 내외분과 마주칠 때가 가끔 있었다. 육 개월 쯤전이었을 터이다. 그날도 내외분을 우연히 만났다. 사모님께서 내게 오시더니
“그이가 몸이 좋지 않다고 하여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어요.” 하셨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신중하신 사모님의 성격으로 보아 괜히 말씀하실 분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조직을 떼어 내었고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에요.”걱정스레 말씀하셨다.
며칠 후 다시 뵈었을 때 좀 어떠시냐고 여쭈어보았다.
“좋지 않아요."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였다.
이후 선배님은 폐암으로 판정되었고 현재는 키모와 방사선 치료를 진행 중이시다.
지난번 병문안을 갔었으나 만나 뵙지 못하고 가져간 배 한 상자만 두고 나왔다. 잠시 짬을 내어 다시 찾아뵈었다. 쉼쉬기가 어려우신 지 코에 호흡기를 끼우고 걸어다니셨다. 말씀을 잘하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식사도 비교적 잘하신단다.
선배님은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두 분 아드님은 출가하여 손주들이 있고 온타리오 주 정부의 판사로 일하는 따님은 아직 결혼 전이시다. 며느리를 포함한 자녀 들 다섯 분 중 네 분은 온타리오 주 정부의 공무원이고 둘째 아드님만 사기업에서 일하신단다. 떠나더라도 아내는 걱정 없이 살만하고 자식들도 고만고만 잘 살고 있으니 아무런 미련도 없다고 하셨다. 그저 아프지 않고 이 년 정도만 더 살다가면 좋겠다며 속내를 드러내셨다.
말씀을 들으며 몇 년 만이라도 함께 하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파릇파릇 새싹 돋는 새봄, 정원을 거니시는 선배님 모습을 몇 번이고 다시 뵙고 싶다.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미셀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잔 모란 수녀님(Sister Susan Moran) (0) | 2016.12.22 |
---|---|
기도하는 손 (0) | 2016.12.22 |
언젠가는 (0) | 2016.12.13 |
안주는 안락사 (0) | 2016.11.22 |
아디오스 폴 (Adios, Paul Saud!) (0) | 2016.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