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아디오스 폴 (Adios, Paul Saud!)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6. 11. 19. 08:46

 늘 바퀴를 굴려야 한다고 말하는 폴이 쿡스타운으로 이사를 간다. 폴은 지난 9년을 함께 살았던 이웃이다. 50대의 시작과 함께 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꼭 필요한 교훈들을 알려주었다.

 그는 핸디맨이다. 집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폴은 차고쪽으로 다가가 엄지손가락으로 차고문 아래쪽를 꾸욱 눌렀다. 손가락이 쑤욱 들어갔다. 비가 스며들어 썩어가는 것이라 하였다. 생각해보니 페트칠을 한지 4~5년이 지났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것도 폴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칠팔 년 전이이었을 것이다. 뇌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검사하러 다니고 또 수술 날짜를 잡아 수술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가게를 인수하여 운영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잔디를 관리하는 데 관심을 가질 여유라고는 없었다. 뒷뜰은 민들레, 질경이 밭이 되어갔다.

 당시 폴과 우리집 사이에는 담장(펜스)이 없었다. 어느 날 보니 폴이 잔디를 걷어내고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 척척 일을 해내는 이웃이 부러웠다. 나중에 보니 정원은 물론 근사한 데크까지 만들었다. (폴은 딸 티나의 결혼식 피로연을 뒷뜰에서 했다)

 나 또한 잔디를 걷어내고 텃밭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였다. 아내에게 핸디맨인 폴에게 수고비를 지불하고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스스로 하면 되지 옆집 아저씨에게 부탁할 것까지 있겠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건축자재를 파는 로우에 가서 판자를 사와 경계를 정한 후 잔디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텃밭을 만들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텃밭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폴이 오히려 우리집 텃밭을 부러워한다. 시작은 자신이 먼저했지만 내가 더 텃밭을 잘 가꾼다고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폴은 무척 가정적인 사람이다. 커피점을 가거나 펍에 가거나 하는 일이 없다. 집에서 커피나 티를 마시고, 럼이나 위스키도 집에서만 마신다. 허튼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 커피점이나 펍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폴은 아내 쉐리와 무척 사이가 좋다. 내가 본 어떤 부부보다 서로 사랑하며지낸다. 10년 가까이 살면서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었다. 아침이면 정원에 있는 꽃과 채소들에 물을 주고 저녁이면 부부가 그네에 앉아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 내외도 틈만나면 뒷뜰에 나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폴은 딸 티나와 아들 케빈에게 매우 헌신적이다. 자신들(부부가)이 잘사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폴의 철학이었다. 그래서인지 딸 티나는 자동차 정비공 안드레(혼다 시실리 딜러 샾의 정비소에서 정비공으로 일한다)와 결혼을 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들 캐빈도 얼마전 결혼을 하였는데 내년 쯤에는 피터브로 쪽에 있는 별장을 팔아 캐빈이 집을 사는데 보태겠다고 하였다. 자녀에게 윽박지르지르거나 간섭하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 교훈을 주려는 폴의 교육법은 남달랐다. 

 폴은 아내 쉐리와 일 년에 두세 번 여행을 떠난다. 크루즈 여행을 하기도 하고 캐래비언 휴양지로 일이 주일 다녀오곤한다. 사는 동안 여러차례 여행을 함께 하자고 제안을 받았다. (그러면서 늘 여행을 하라고 권하곤 하였다)

 이렇듯 폴과 쉐리는 살아가는 법을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었다. 폴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서 집(house)을 관리하고 돌보는 일을 잘 몰랐을 터이다.(물론 아직도 모르는 일이 너무 많지만) 또한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폴과 나는 뒷뜰에 앉아 폴이 만든 칵테일을 즐기며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폴이나 나나 50대에 함께 보낸 10년 가량의 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뒤돌아보면 폴 내외와 이웃하며 지낸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다.

 어제부터 폴은 이사를 시작했다. 이삿짐을 운반하는 트럭을 빌려 직접 짐을 나르기로 했단다. 짐을 싼 박스들을 차곡차곡 트럭에 실었다. 이사를 위하여 이삿짐 나르는 트럭을 5일간 빌렸다고 했다. 이삿짐 센터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차를 빌려 이사를 하는 폴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인생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살아내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짐을 싣다말고 내게로 다가온 폴이 말했다. “대, 바퀴는 멈추어 서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야. 바퀴는 계속 돌려야 되. 인생의 바퀴도 그런 것임을 잊지 마.” 폴과 나누었던 대화며, 삶을 통하여 알려준 교훈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디오스 폴!(Adios, Paul Saud!)  

'미셀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젠가는  (0) 2016.12.13
안주는 안락사  (0) 2016.11.22
프러포즈를 받은 딸을 축하하며   (0) 2016.11.15
제8회 본남성합창단 정기연주회 공연 관련 기사 원고(안)  (0) 2016.09.21
다시 찾은 뉴욕  (0) 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