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안주는 안락사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6. 11. 22. 23:54

 손에는 스페인어 교본이 들려있었다. 스페인어를 공부한다는 거였다. 웬 스페인어 공부냐고 물었다. 희미한 미소가 공부하여 나쁠 것 없지 않으냐고 답하고 있는 듯하였다. 궁금해하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쿠바 아바나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어요.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앞으로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서요. 다음번 행선지를 멕시코시티로 결정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의 모습이 체 게바라를 닮은 듯하였다. 체 게바라가 혁명으로 민중을 이끌려고 했다면 그는 도시 빈민촌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이기를 자청하는 사람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배낭여행을 한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다. 힘들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배낭여행 하실 만 하던가요?”
 네 환상적이었어요무엇보다 각국에서 오는 배낭여행자를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하는 일이 정신적인 일이라 재충전이 필요한데 배낭여행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듯해요. 하루에 숙박비 15불, 식대와 교통비 등 15불 도합 30불만 쓰기에 경제적이기도 하구요.”

 배낭여행 한 번 해보시지 그러세요. 아직은 젊으시니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신 것으로 아는데 좋아하실 거에요. 새로운 것 보는 눈을 가지셨고 아름다운 소리를 분별할 줄 아는 귀도 가지셨잖아요.”

 칭찬과 격려에 용기를 얻어 되물었다. “정말 가능할까요?”

 가능하고 말고요. 운동도 열심히 하시잖아요.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 목표와 목적이 있다면 더욱 신나고 재미있을 거로 생각해요.”

 그를 처음 만난 건 십여 년 전 2 3일의 수련회에서였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룹을 이루어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리를 길게 기른 모습이 예술가처럼 보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인 듯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타를 능숙하게 다루며 노래했고 이야기도 잘 풀어냈다. 부친이 목사였었는데 자신도 목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에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려 해요. 야고보가 걸었던 800킬로 길을 걸으며 삶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 보려고요. 아는 분 중 70세가 넘으신 분이 최근 산티아고 길을 걷고 오셨어요. 그분이 제게 권하여 가기로 한 거랍니다. 마침 내년에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쳐요. 졸업하면 스페인으로 오게 하여 마지막 100킬로는 함께 걸을 예정이랍니다. 딸과 함께 걸으며 인생을 이야기하려구요. 그리고는 온 가족이 함께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계획이랍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모금운동도 병행할 것이라 하였다. 제인과 핀치 지역에 커뮤니티 센터를 지을 계획인데 이 커뮤니티 센터 건립을 위하여 8만 불을 모금하겠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전에 사두었지만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이 있음을 기억해 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던 정진홍 교수가 쓴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였내용 중 안주는 안락사는 표현에 눈길이 머물렀다. 

 비 맞은 김에 머리 감는다고 토마스 목사의 권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볼까 한다. 산티아고 길에서 바라보는 인생길은 어떤 모습일까.

  

 인생의 산소는 크고 작은 도전에서 나온다. 도전하면 스스로 삶의 산소를 만들 수 있다. 삶의 산소가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호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걸음으로 갈 수 있고 진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그게 애써 도전하는 이유이다. 그냥 저질러보고 그게 남이 안하는 이상한 짓거리로 튀는 것이 아니다. 도전은 삶의 산소를 만들어 스스로 호흡하게 하고 주변과 세상도 쉼 쉬게 만드는 그런 힘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이 길은 2000년 전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예수 사후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명을 좇아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별반 소득 없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헤롯 왕에게 붙잡혀 순교해 그 유해가 죽어서 다시 간 길이고 그가 묻힌 곳을 향해 1000년이 넘도록 숱한 이들이 한 발 한 발 걸어서 간 길이다. 이 길은 누구도 함께 가는 길이 아니고 그 누구와 경쟁하며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홀로 고독하게 시시각각 삶과 죽음의 경계 위를 밟고 있음을 자각하며 가야 하는 길이다." 정진홍 저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문학동네)중에서


 * University Presbyterian Church <www.universitychurch.ca>를 담임하고 계신 토마스 김 목사님은 현재 페루를 여행 중이시다. 여행지에서 몇 장의 사진을 보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