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며칠 앞두고 황석영씨가 쓴 ‘손님’을 읽었다. 몸서리치는 살육 현장이 작가적 상상력으로 생생히 되살아났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우리집 과수원에 일하러 오시는 분들도 세상이 바뀌면 무자비하게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성백이네가 아니면 재식이네가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싶었다.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실까 싶어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손님’을 읽으며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려졌다. 어쩌면 당신께서도 신천양민학살 사건의 이야기를 들으셨거나 비슷한 경험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원산까지 진격해 갔었고 장사상륙작전 후 적들에게 포위되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셨다. 미군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출되어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다. 적에게 포위된 상태로 대치하던 중 비가 내리면 추위에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하셨다. 군복이 젖은 상태였는데 바지를 입은 채로 오줌을 누면 그나마 몸이 따뜻해졌는데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누어주셨다.
지난주 토요일(2월 24일, 2018) 큰빛교회에서 올려진‘오페라 손양원(박재훈 작곡)’에서는 손 목사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안동선이라는 학생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황석영 씨의 소설 ‘손님’과 박재훈 작곡의 오페라 ‘손양원’은 전쟁은 참으로 참혹한 것이라는 것과 이념과 환경은 멀쩡하던 인간을 광기로 내몰아 야수로 변할 수도 있게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2018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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