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2018년 가을학기 본 시니어대학 글쓰기 강좌(3)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8. 10. 2. 22:51

<2018년 가을학기 본 시니어대학 글쓰기 강좌(3)>

 

글과 나

최민자

 글은 사람이다. 깜냥대로 쓴다. 섬세한 사람은 섬세하게 쓰고 묵직한 사람은 묵직하게 쓴다. 제 몸뚱이를 척도로 세상을 재는 자벌레처럼 글이 사람을 넘어설 수는 없다. 몸 속 어디 침침한 곳에 미분화된 채 고여 있는 생각들, 강고한 존재감으로 물질성을 획득한 기억과 상념들을 색출하고 용출해 방출해내는 작업이 글쓰기이다. 한 삼태기의 꽃잎을 쥐어 짜 한 방울의 향료를 추출해 내는 일처럼 몸 안에 스민 생각들을 걸러내 활자화하는 공정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사진이 이미지의 물질화라면 글은 영혼의 지문 같은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한 것, 온 몸으로 관통해온 시간이 녹아들어 문채文綵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글의 우열을 따지는 일은 영혼에 눈금을 매기는 일처럼 부질없는 처사일지도 모른다. 꽃이 저마다의 체취로 향기롭듯 글도 제각각의 취향으로 빛난다. 그럼에도 좋은 글은 분명히 있다. 너무나 명철하고 아름다워서 틍증까지 유발하는 글들도 많다.

 어찌하면 좋은 글을 지어낼 수 있을까. 세상은 넓고 글 잘 쓰는 사람 또한 너무나 많다. 깊고 깊은 인문적 통찰, 예리하면서도 서정적인 여운을 거느린 문장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꽂히는 강속구처럼 내 뇌리를 강타한다.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탐색들, 시퍼렇게 날이 선 직관과 빛나는 성찰의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글이란 결국 삶의 이력이요 사람 자체임을 여지없이 실감하곤 한다. 앙상한 서사에 덧입히는 상상이나 어설픈 감성의 거스러미를 건드리는 재주만으로는 존재의 심연에까지 당도할 파동을 생산해낼 수 없을 터이므로.

 처음, 나는 내 글들이 이룬 바 없이 시들어가는 나를 조금이나마 돋보이게 해줄 장식깃털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시간의 물살에 마모되고 감가상각당한 외피보다 벼려지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내면이 뜻밖의 빛을 발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풀을 뜯어먹고 우유를 생산하는 소도, 척박한 언덕에서 환한 노랑을 길어 올리는 개나리도 되지 못했다. 세상을 향한 온기도 존재의 품위도 드러내지 못하고 옹색하고 얄팍한 마음 안팎의 풍경이나 자지레한 일상의 단면 따위를 아둔한 필치로 그려냈을 뿐이었다. 바람부는 광야를 관통해 본 적도, 고요해 홀로 깊어 본 적도 없으니 무엇으로 깊이와 넓이를 더하랴. 깊게 파고 싶으면 넓게 파야 된다는 상식에 눈 감은 채 우물 안 고인 물이나 퍼 올리고 있었음을 이즘에야 아프게 절감하곤 한다.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글이 나를 빛내주는 장식은 되지 못했다하여도 깃털노릇은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줄기에 돋아있던 멋진 골편이 장식용이 아니라 실존에 불가결한 체온조절의 방편이었듯이 글쓰기는 내게 삶의 덧없음과 허망으로부터, 그 공격적 허무로부터 방어하고 붙들어주는 존재의 외피와 다름이 아니었다. 피아니스트가 열 손가락으로 천상의 선율을 터치해 내듯 나 또한 열 손가락으로 컴컴한 내면의 지층을 더듬는다. 얼짱 각도로 셀카를 찍고 포토샵으로 보정한 가짜 이미지를 진짜 자기라고 착각하는 소녀처럼, 키보드가 분식해 낸 활자들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내려 애쓴다. 글이 몸통이 되지 못하고 깃털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을 글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나는 모니터를 마주 하고 있을 때 가장 나다운 충일함을 느낀다. 저 무식한 직사각의 아가리나 내 생의 시간들을 속수무책으로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이라 하여도 그 팽팽한 긴장과 대결의 시간이 없다면 호시탐탐 덮쳐누르는 불안과 허무를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좋은 글쟁이가 되지 못하여도 좋은 독자로 늙어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충만한 축복일 터이다. 뽕망치로 꽝! 얻어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나는 문장을 만나는 일만큼 살아있음을 각성시키는 순간도 흔치 않다. 예나 지금이나 나를 가장 매혹시키는 사람은 글 잘 쓰는 사람이다. 늙던 젊던, 대머리건 털북숭이건, 살아있건 고인이 되었건 마찬가지다. 예리하게 벼려진 감각으로 성찰의 깊이를 드러내는 문장의 근력이 초콜릿 복근보다 백배는 더 매혹적이다. 엔진의 동력과 파괴력이 다른 글들,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가 기품 있게 풍겨나는 그런 글들의 위엄 앞에서라면 언제라도 나는 흔쾌히 좌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 중에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아니한다.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서책의 기운)가 필요하다.”고 한 대목이 나온다. ‘문기’-서권기書卷氣 혹은 문자향文字香이라고도 하는데, 학식 높은 선비의 그림에 있어서 그림이 정확한 형상을 묘사하거나 진한 채색을 쓰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품격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흔히 남종 문인화에서 이러한 표현을 중시한다.

 

 

수필은 내 삶의 지침서

김재희

 어느 산골짜기 바위틈에 새치름히 피어 있는 구절초가 눈길을 잡습니다. 찬 이슬 살짝 내리기 시작하는 때에 피는 구절초의 꽃잎은 코끝이 싸한 향기를 품고 있지요. 건드리면 툭 터질 것 같은 울음방울을 하고 있는 듯 모습이 참 애잔합니다.

 구절초 속에 애틋한 기억이 숨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선 휴일이면 산에 올라 구절초를 캐러 다니셨습니다. 그리 흔치 않은 꽃이라서 조금씩 모아 말려두면 어머니는 그걸 고아 환을 지어 내 약을 만들었지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약인 줄 몰랐습니다.

 병약한 딸을 위해 산골짜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셨을 아버지의 노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줄줄이 놓여 있는 약병들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구절초 약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거라는 생각에 몰래몰래 버리곤 했지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약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약에 대한 가치가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들은 그대로 버려진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것들은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정성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비록 아버지는 모르고 계셨지만 그 약효는 알게 모르게 내게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 나에게 유일한 낙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다가 끊어져 버린 길 앞에 퍼질러져 앉아 책을 뒤적이는 일이었습니다. 그 속엔 없던 길이 보이고 잠든 꿈이 깨어 있고 바라볼 희망이 있었기에 늘 풍만한 세상이었거든요. 그랬기에 결코 어둡지만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버려졌던 약의 효험이 그렇게 나를 지켜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그 약과 맞바꾸었던 생명의 싹, 문학을 향한 열정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겁 없이 끼적이던 때가 참 용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의 테두리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봤을 때의 환상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글을 쓴다는 사실이 이렇게 힘든 작업인 줄 몰랐습니다. 문단에 데뷔하던 때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미 이처럼 지쳐버렸다면 저는 소질이 그리 많은 편안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쉽게도 찾아내는 소재를 나는 왜 알아내지 못했는지 그저 뒷북만 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는 일에 하필이면 문학을 택했는지 스스로 감당 못 할 역량인 줄 모르고 깝죽댄 꼴 같아서 뒤통수가 후끈거립니다. 다른 사람의 인간승리(수필승리)를 대할 때마다 제자리만 지키고 있는 내 걸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놓아버리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많습니다. 어찌 보면 길 잃은 철새가 계절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서성거리고만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글이라는 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알게 모르게 제 가슴에 새겨주신 생명의 싹이니 어떻게든 키워 열매를 맺어야겠지요. 그러나 그저 그런, 풀품없는 열매들만 너절하게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 몇 편이라도 글다운 글을 건지고 싶습니다.

 만근이나 되는 종은 짤랑짤랑한 가느다른 울림을 내지 않는다.”는 깊이와 구름이 비가 되어 황하로 흘러 천 리 사방을 적신다.”는 은근함을 표현해 보고 싶고 아무리 아름다운 비단이 많아도 옷을 자를 때 치수를 정확히 맞추어 자르는 것이 아름다움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라는 순리를 잘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환희와 슬픔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문자도 같이 웃고 눈물지을 만큼의 묘사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말에도 귀 기울여보고 꽃이 지나치게 많아 피면 가지를 손상시킨다.”는 말도 꼭 새겨 두어야겠습니다.

 한편의 작품 가운데도 여러 가지 심정의 움직임이 통괄되어 있어 마치 30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에 집결되어 있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문장의 기본 원리나 조직에 관해서도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이외에도 말은 마음의 소리요 문자는 마음의 그림이다.”등등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꼭 닮아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제게도 그런 글 한 줄 뽑아낼 수 있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요?

 더불어 제 삶도 그렇게 꾸며보고 싶습니다. 문장 짓기의 이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깊고 은은한 성품, 지식을 제대로 잘 이용할 줄 아는 지혜, 진실한 감정 등을 갖추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전체의 분위기 발맞추어 나갈 줄 알며 비록 가벼운 감정일지라도 주고받는 정리를 쌓아야한다는 교훈이 아니겠는지요.

 그렇듯 수필쓰기는 제 삶의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작은 소재 하나가 사색으로 버무려져 수필 한편으로 승화되어 나오듯 인간사 역정이 지침서에 걸려 저 환희의 웃음을 얻게 되겠지요. 정말 환한 웃음을 웃고 싶습니다.


 

청에 젖다

안희옥

 소리를 따라 새떼가 날아오른다. 천변의 갈대들은 중모리로 춤을 추고 만추의 은행잎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허공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소리가 강물처럼 유장하다. 강이 바라보이는 정자에서 대금연주가 한창이다. 가랑비 내리는 궃은 날씨에도 소리에 취해 하나 둘 모여 든 사람들로 여남은 평 되는 마루가 빼곡하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소리에 듣는 이들의 가슴도 함께 저릿해진다. 무의 공간을 꽉 채운 팔색조 같은 소리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한이 서려 있다.

 대금에는 바람을 불어넣는 취구와 음정을 나타내는 여섯 개의 지공이 있다. 취구와 첫 번째 지공 사이에 난 구멍을 청공이라 한다. 이곳에 떨림판 역할을 하는 청을 붙이는데, 갈대 속의 얇은 막을 뽑아내어 만든다. 청은 대금의 소리를 더욱 신비하고도 생명력 있는 소리로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 가락 감상 동아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소탈하면서도 유쾌한 성격인 그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대학 다닐 때부터 국악에 관심이 많아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전통 악기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장단이나 소리에 익숙지 않은 회원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며 우리 가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청 같은 존재였다.

 청은 음력 오월 단옷날을 기준으로 약 일주일가량 채취한다. 갈대 속에 수분이 충분히 올라와 뽑아내기 쉽기 때문이다. 아랫마디의 것이 두껍고 윗마디로 올라갈수록 얇아진다. 얇은 것은 청소리가 쉽게 나기 때문에 산조대금에 붙여 사용하고 두꺼운 것은 주로 정악대금에 사용한다. 어렵게 채취한 청은 뜨거운 김과 찬 김을 번갈아 가며 쏘여야 적절한 탄력이 생겨 맑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소리나 악기에 문외한인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익히는 속도가 느려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소리의 빠르기, 음의 고저장단도 잘 모르던 내가 부드러우면서 달콤하고 따뜻하면서도 그윽한 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연배가 비슷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매사에 열정적이면서 겸손했으나 술 한 잔에 허허롭고 시린 마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무심한 듯 내뱉는 이야기 속엔 언뜻언뜻 외로움이 내비쳤다. 사람의 삶은 겉모습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듯싶었다.

 평온하던 그의 가정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십여 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활동적이어서 바깥일에 분주한 아내와 다정다감하며 가정적인 그의 성격은 곳곳에서 부딪치며 충돌했다. 얇아서 따로 봉투나 주머니에 보관하지 않으면 작은 힘에도 잘 찢어지는 청은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일교차가 심한 봄 날씨처럼 서로의 상처들을 보듬지 못한 부부 사이에는 조금씩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대편 의견을 존중하기보다 각자의 생각을 고집하다보니 틈은 점점 벌어져 갔고 결국 이별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삶의 버팀목이었던 그의 이혼은 부모의 가슴에 대못으로 자리 잡았다. 아내가 떠나간 후 남겨진 남매를 끌어안은 그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대금은 취구를 통해 입김을 불어넣어 기본 소리를 내고 여섯 개의 지공을 여닫아 음높이를 조정한다. 숨을 불어넣는 입술의 각도와 입김의 빠르기, 양에 따라 청의 떨림이 다르다. 무작정 숨을 빠르게 많이 넣어도 안되고 너무 느리고 적게 해도 안 된다. 호흡과 입김을 일정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입술의 각도를 바꿔 가며 연주해야 한다. 청은 저음부에서는 부드럽고 중음부에서는 맑으며, 고음부에서는 시원하고 장쾌한 소리가 나도록 숨을 조절해야 한다. 음계에 맞추어 호흡에 집중하면서 부단한 연습을 통해 숙달해야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청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떨림에 있다. 떨림이 없다면 결코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한쪽 날개가 꺾인 아들을 바라보며 상심한 어머니는 급기야 뇌졸증으로 쓰러졌고 아버지마저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린 자식들의 흔들리는 눈망울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그를 조금씩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떨림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다.

 어름사니가 합죽선으로 허공에서 중심을 유지하듯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잡아준 건 청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비참함이 달려들 때 젊은 시절 불던 대금을 손에 쥐었다.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지 못한 사연들은 청을 떨며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민과 갈등, 눈물과 고뇌들이 소리에 섞여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혼자 끙끙거리며 힘들었던 순간을 숨에 실어 내밭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힘이 났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다. 마음 한구석에 늘 죄송함으로 남아 있던 양친도 편안한 안식을 얻어 떠났고, 홀로 키운 아이들도 잘 자라 제 자리를 찾아 갔다. 마음의 평안을 찾은 그는 자신처럼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들려주려 했다. 대금연주회는 그런 취지로 해마다 갈대꽃이 만발한 늦가을에 열린다.

 지천명을 넘긴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편안한 삶 속에서 행복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지만 절망과 고통으로 감당하기 힘든 때도 많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싶을 만큼 막다른 골목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순간순간 일어나는 삶의 떨림을 참고 견디다보니 조금씩 용기도 생기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도 터득했다. 욕심도 두려움도 상처도 하나씩 내려놓으니 강의 하구처럼 잔잔해졌다.

 청아한 울림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음색은 한없이 가녀리다가 금세 호쾌해지고 구슬프게 울다가도 웅혼하게 살아 숨 쉰다. 지공 위로 손가락이 넘나들고 들썩이는 팔꿈치에 음들이 파동을 친다. 진양조의 부드럽고 은은한 소리가 중모리와 중중모리를 거쳐 자진모리로 변하는가 싶더니 폭발하듯 장쾌한 소리로 바뀐다.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연주에 좌중에선 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소리는 다시 진양조가 되고 연주는 끝이 났다. 그가 밝은 웃음을 머금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대지는 가을비에 젖어 촉촉해지고 소리에 젖은 내 마음도 어느새 고요해진다.

 -9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분 우수상 수상작



구두

조일희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거리 중국집주차장에 웬 사내가 군드러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받친 채 자고 있는 사내 옆으로 반쯤 남은 소주병이 파수꾼처럼 서있다. 아니꼬운 사내를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무심히 지나치려는 나를 사내의 알근한 구두 한 짝이 빤히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한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에도 양말을 신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었다. 애옥한 형편에 새 신발이라야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명절빔으로 받은 검정 고무신이나 운동화가 전부였다. 강산이 두 번씩 바뀌어도 우리 집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흐르는 시간은 촌스러운 나를 싸구려 구두를 신어도 아름다운 나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가 내민 화려한 구두가 솔직히 탐이 났다. 나와 어울리는지, 잘 맞는지 생각지도 않은 채 덥석 구두를 신고 첫길을 따라나섰다. 새 구두가 편해지기까지는 조율의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맞춘 듯 편안한 신발도 있겠지만, 구두 뒷축과 발꿈치가 부대껴 상처가 나는 구두도 있다. 서둘러 떠난 첫길 초입부터 구두는 까탈을 부렸다. 뒤꿈치가 까지고 선홍색 피가 맺히는 날이 자주 생겼다. 시간이 지나도 새 구두는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사랑이 결핍된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 주지 못했다. 그의 상처의 시원始原은 알고 있었지만, 상처를 보듬기엔 내 마음의 소沼가 깊지 않았다. 그 사람 또한 내 아픔의 원천인 빈곤한 친정에 대한 마음을 나누기보다 비웃음으로 일관했다. 서로의 이기利己로 택한 삶 속에서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었다. 그는 돌개바람처럼 밖으로 나돌며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술로 채웠고, 외로움으로 하루를 채운 나는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허허로운 거리를 걸었다.

 아침이 오면 세상의 찌꺼기가 묻은 그의 구두를 솔로 털어내고 부드러운 헝겊으로 정성스레 닦았다. 그러다 보면 서걱거리는 우리 사이도 윤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언제부턴가 그의 구두 끝이 바깥을 향했다. 밖으로 새는 건 그의 마음만이 아니었다. 물려받은 재산도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내 얼굴에서 어두운 기미라도 보이는 날이면 그는 상처를 들킨 짐승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술로 보내는 날이 달포 해포 이어지며 그는 휘뚝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정신이 아득해져도 틀어진 구두를 바로잡으로 열심히 구두를 닦았다. 걸을 줄 모르는 앉은뱅이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 그의 구두를 만지고 또 만졌다. 언젠가 제 모양으로 돌아올 날이 있으리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어쩌면 구두가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마지막 끈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인연의 끈이 끊어질까 두려워 흔들리는 마음을 닦듯 매일 구두를 닦았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남편의 구두는 밖을 헤매고 있었다. 소파에 기댄채 설핏 잠이든 모양이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전화기 속 낯선 남자가 일러준 유희의 골목을 서너 바퀴 돌고 나서야 지하주차장 입구에 퍼져 있는 그를 찾을 수 있었다. 푸푸거리며 자고 있는 그를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뒤돌아서서 나오고 싶었다. 시시포스 형벌처럼 반복되는 지금의 현실이 두렵고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또 무서웠다.

 어둠이 익숙해지자 보이지 않던 그의 구두가 희미하게 보였다. 찌그러진 구두를 옆에 벗어두고 잠들어 있는 그는 신발만 벗어 놓은 게 아니었다. 자존감과 체면까지 어두운 바닥에 내던져버린 거였다. 그 순간, 벗어던진 건 구두가 아니라 나와 아이구나, 저 구두처럼 우리는 차가운 바닥에 내던져 있구나, 나를 눌렀던 어둠의 실체가 섬광처럼 보였다.

 어방다리를 짚고 살았다는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두려움을 먹고사는 어둑서니처럼 나는 긴 세월을 두려움과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살았다. 육신의 안락함을 위해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살았다. 후회의 눈물이 마른 가슴으로 흘러내렸지만 누굴 탓하랴. 화려한 구두를 신은 건 나의 선택이었거늘. 구두끈을 묶은 것도 나였으니 푸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십여 년을 끌고 다니느라 구겨지고 금이 간 구두를 벗어던졌다. 지난 세월이 어제 일인 양 스쳐 지나간다. 어울리지도 않은 구두를 신고 언틀먼틀 길을 부단히 걸어왔다. 억지로 구겨 넣은 발은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어 여기저기 흉터투성이였다. 뒤돌아보니 디뎠던 자리마다 퍼런 발자국이 선명하다. 우묵하게 패인 자국에 거무스레한 어둠만이 담겨 있었다.

 어느 덧 상처는 단단한 옹이가 되고 여문 옹이에서 용기라는 싹도 움텄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가끔 상처가 꽃으로도 보인다. 이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보냈던 날을 평온하게 보낸다. 쌓였던 아픔을 조금씩 밖으로 드러내자 뾰족한 상처의 편린들이 쏟아진다. 가시처럼 콕콕 찌르던 아픔은 희망을 쓰는 촉이 되어 어슬프게나마 글마당을 거닐게도 한다.

 하루해가 저문다. 노을빛 저녁 풍경 속으로 사붓사붓 걸어가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낡지만 편안한 구두 한 켤레로 남아도 좋을 인생길이다.

-2017년 토지문학상 수필 대상 수상작

 

 

실패는 자산입니다

閑素

 실패는 길가에 박힌 돌부리와 같습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되듯이 실패를 경험했을 때 역시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여 발목이 잡혀서는 안됩니다. 실패는 한낮 지나가는 찻잔 속의 폭풍일 뿐입니다. 실패는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실패에 너무 큰 의미를 둔다거나 마음 깊이 새겨 두어 자신을 갉아 먹게 해서는 안됩니다.

 실패는 더 노력해야 함을 의미할 따름입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고 진일보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때문에 실패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입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인생의 계급장을 한 계급 더 올려 줍니다. 실패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며 그렇다고 일시적인 불편 요소도 아닙니다. 실패는 하나의 디딤돌입니다. 실패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호주의 시드니에서 열리고 있는 호주 오픈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친구이자 연습파트너인 린지 데번포트(Lindsay Davenport)를 꺽고 결승에 진출한 제니퍼 카프리아티(Jennifer Capriati)는 한 때 미국 테니스계의 신데렐라였습니다. 14세 때인 1990년 프랑스 오픈 준결승에 올랐으며 이듬해(1991) 윔블던과 US 오픈의 준결승에 진출, 세계랭킹 6위까지 뛰어올랐습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당시 세계 테니스계의 여제(女帝) 슈테피 그라프를 꺽고 금메달을 차지하여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서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상에 서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대와 부담감 때문에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하게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 그녀는 94년 이후 3년 동안 테니스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도죄로 체포되는 등 방황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카프리아티는 마약복용과 비만, 잘못된 생활습관과의 필사적인 싸움 끝에 테니스계로 다시 복귀하였습니다. 한 때 세계랭킹 2 27위까지 떨어졌던 자신의 랭킹을 14위까지 끌어 올렸으며 금년 1월 호주 오픈 결승(그랜드슬램 대회중의 하나인)에서 마티나 힝기스를 누르고 정상을 차지 하였습니다. 카프리아티 스스로가 마약복용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재기하지 못하였다면 영영 잊혀질 수밖에 없는 비운의 깜짝 스타었겠지요. 하지만 그녀는 실패와 방황, 좌절 끝에 다시 일어나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1 23일 별세하신 운보 김기창 화백 역시 역경을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는 일곱 살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어 평생을 듣지 못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베토벤도 청각장애자 였지만 그것은 삶의 후반부에 일어난 일이었고 화가 고야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장애자가 된 선생님은 신체적 장애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청록산수, 바보산수)를 여셨습니다. 평소에 헬렌 켈러를 존경하였으며 농아들에게 끝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복지를 위해 앞장섰습니다.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도 꺼지지 않는 활력으로 창작활동에 임했던 선생님은 명실상부한 한국 화단의 거목이었습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삶은 수 백만 명의 장애인들에게 빛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패는 위대한 스승이지 장의사가 아닙니다. ‘불가능 해’라는 말은 ‘다시 한번 시도해야 해’와 같은 말입니다. 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목표 지점에 이르기 위한 결심은 바꾸지 말고 그 지점에 이르는 방향, 즉 가는 길만 살짝 바꾸면 됩니다. 목표만 분명하다면,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만 분명하다면 역경과 실패란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율배반(利率背反)일지 모르나 운명은 결코 처음부터 결정 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은 소망의 크기에 따라, 소망의 확실성(소망이 분명하냐 분명하지 않으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정상인 보다 더 나은 능력을 보여 주었던 헬렌 켈러와 심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놀라운 박애 정신을 발휘한 나이팅게일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상인 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노력의 댓가로 스스로 설정한 목적과 목표를 이룬 인간 승리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실패를 경험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실패를 했을 때 좌절하고 넘어져 스스로 포기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 그 실패를 교훈삼아 새롭게 도전한다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제 끝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 다시 한번 부딪혀 보십시오. 어제는 지난밤으로 끝이 났으며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날입니다. 조지 패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며 내 안의 엔진을 서서히 식게 하는 이런 말이 두려울 뿐이다. “그냥 있어, 네가 바로 정상에 있는 사람이니까. (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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