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 소설가 필립 로스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 레이먼드 첸들러
글을 쓰는 사람은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서 쓰는 것이다. 하루 네 시간은 못쓸 지라도 하루 두 시간 이상은 쓰는 사람이라야 작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레이먼드 첸들러(Raymond Chandler 1988~1959)는 미국의 소설가 데실 헤밋과 더불러 하드 보일러 소설의 전형을 제시한 인물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창조했다면 레이먼드 챈들러는 필립 말로를 만들어 냈다.
첸들러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지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그는 손으로 문을 잡은 채 반짝이는 갈색 눈으로 담담히 실내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탄탄한 체구에 얼굴이 갸름하고 입매다 단정한 미남이었다. 갈색 상의 주머니 밖으로 하얀 손수건이 살짝 빠져나와 있었다. 왠지 긴장을 했으면서도 자못 냉정해 보였다. <붉은 바람> 중
“그날 밤 사막바람이 불었다. 고온 건조한 샌타애나의 전형적인 열풍이었다. 이 바람이 산 고개를 넘어 내려오면 머리카락이 곱슬곱슬 말리고 피부가 가려워지고 괜히 초조해진다. 그런 밤이면 어느 술판이든 한바탕 싸움으로 끝난다. 유순하고 가냘픈 아낙네들은 식칼의 날을 만지며 남편의 목을 노려본다.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각테일 바에서 거나하게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붉은 바람의 도입부>
필립 로스(Phillp Milton Roth 1933~2018)는 미국의 유대계 작가로 현대 영미 문학의 전설이며 작가들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문체의 특징이나 내용이 간결하지만 주목할 점은 기름기를 빼고 군더더기를 제거한 후에 장문으로 다듬는 솜씨인데 직관적인 단문과 적절히 썩어 만든 내용이 플롯 안에 살아 움직여 사고의 전개가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쁘르다, 문장의 울림도 강한 편이다. 대표작으로는 ‘굿바이 콜럼버스’ ‘포트노이의 고백’ ‘미국 3부작’ 등이 꼽힌다.
아래의 글은 조선일보 백영옥의 <말과 글>에 실린 ‘글 쓰는 일’에 대한 내용이다.
[백영옥의 말과 글](266) 글 쓰는 일
스티븐 킹과 시드니 셸던의 팬이었던 어린 시절, 큰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이 길고 복잡한 소설을 그토록 줄기차게 써낼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작가가 됐지만 여전히 나는 동료 작가들에게 작법이나 창작의 비밀 같은 것을 묻는다.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는 “첫 문장을 썼으니 반은 쓴 거나 매한가지!”라는 작가들의 자조 섞인 농담을 위안 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소설 쓰는 일에 대해 잘 말하지 않게 된 건 글 쓰는 일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뮤즈’나 ‘영감’과 무관한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작법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을 꾸준히 쓰려면 태도가 더 중요하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과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사는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 좋아서 쓰는 것이라기보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 쓴다. 언제 써질지 모르니 불안해서 쓰고, 앞으로는 쓸 수 없을 거란 예감에 시달리니 쓰지 않을 수 없다. 간절함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 배우 윤여정도 “가장 연기가 잘될 때는 돈이 없을 때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함에 불안이 차오르지만, 일단 5매만 쓰자, 오늘은 썼으니 내일도 쓸 수 있을 거다, 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쓴다. 하루하루 그런 시간들이 모여 책이 된다
가슴 설레는 일을 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우리를 꿈꾸게 하지만 현실에선 잘 적용되지 않는다. 글이 쓰고 싶어서 아침마다 눈이 번쩍 떠진다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영감을 기다리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는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말을 성경처럼 새기고 ‘영감’이 아닌 ‘마감’의 힘으로 버티는 게 이 업계의 일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실은 이런 힘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니 할 수 있고, 갈 수 있고, 쓸 수 있을 때 힘 내보자는 생각이 든다. 생전 박완서 선생님이 나이가 드니 책 못 읽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나도 노안이 오면 곧 못 읽을 때가 오니, 책도 촌음을 아껴 읽어야겠다. - 소설가 백영옥
* 필립 로스의 미국 3부작은 ‘미국의 목가(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 스테인(2000)’을 일컫는 말이다.
* 필립 로스와 레이먼드 첸들러에 대한 설명 부분은 나무 위키를 참고하였다.
* 루이스님의 브런치에 실린 '하루키가 쓴 탐정소설인가? 레이먼드 첸들러'도 참고 하였음을 알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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