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부부가 학회 참석차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사위가 참석할 내분비내과 전문의 모임이 LA에서 열리는데 딸도 일정을 비워 함께 간 모양이다.
이 주일 전 큰딸 내외는 이박 삼일의 일정으로 토론토를 잠시 다녀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들은 조만간 LA와 포틀랜드를 여행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5월 2일부터는 딸이 참석할 노인과 전문의 모임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있을 예정이어서 부부가 함께 시간을 내어 다녀오게 된다고 한다.
자녀들이 이 도시 저 도시 다니면서 학회에도 참석하고 여행도 하며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젊은 시절 출장을 더러 다녔다. 캐나다로 와서 살게 된 것도 어쩌면 출장을 다니면서 더 넓은 세계를 본 결과가 아니었을까. 당시 이곳저곳 다녀보면서 국내에서만 산다면 너무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출장으로 몇차례 다녀온 네덜란드가 그랬다. 한 회사의 연말 파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영화에나 나올법한 특별한 장소를 빌려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직원들과 가족들이 화려한 연미복을 차려입고 떠들썩하게 파티를 즐겼다. 그곳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은 연말연시 이삼 주간 시간을 내어 캐러비언으로 아프리카로 휴가를 떠났다.
당시 국내기업들은 토요일도 휴일이 아니고 오전 근무는 하는 때였다. 한 해에 일주일 있는 여름휴가를 가지는 것도 왠지 불안하였고, 휴가를 떠나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의 문화였다. 하지만 유럽 회사들은 달랐다.
네덜란드의 그 회사만 하더라도 비즈니스를 네덜란드에만 국한 시키지 않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다. 그런 환경인지라 한반도에서만 일하고 사는 것이 좁게만 느껴졌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았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서구사회에서 공부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자녀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나가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 가정에서 맏이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막중한 것인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시고 허락하셨다. 좁은 한반도에서만 살지말고 더 넓은 곳으로 가서 마음껏 살아보라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집안의 어른이신 당숙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살만한데 구태여 외국으로 나가 살려고 하느냐고 극구 말리셨다. 심지어 호주로 이민을 가서 사고로 자녀를 잃은 젊은 가정의 예를 들면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역설하셨다.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며 안타까워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장남이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겠다는 걸 허락하신 부모님이 대단하셨다. 입장을 바꾸어 나 자신이 아버님이나 어머님 같았으면 어땠을까. 자식을 실망하게 하거나 부담을 주기 싫어 대놓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가슴이 아리셨을까.
년 전 두 딸이 삼사 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자신들을 북미주에서 공부하고 살 수 있도록 해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은 자녀들 스스로 북미주에서의 삶에 만족한다는 이야기여서 이주를 결심할 때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음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고국에 홀로 계신 연로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아내와 내가 이곳 캐나다로 와서 살 결심을 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두 딸이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가정을 이룬 자녀들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더 그렇다. 학회에 참석하는 남편을 따라 뉴욕에서 LA 행 비행기에 오르는 딸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고, 또 다른 학회에 참석할 딸과 포틀랜드 행 비행기에 오를 사위를 생각해도 그렇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학회에 참석하고 여행을 하는 등 젊은 시절 누구나 꿈꿀 일상을 사는 자녀들을 보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
2019년 4월 26일 프리라이팅
https://am.aace.com/2019/AACE/
https://meeting.americangeriatrics.org/
'미셀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봄학기 본 시니어대학 글쓰기 강좌 4 (0) | 2019.05.09 |
---|---|
‘삶의 효율성을 막는 게으름’ 강의를 듣고 (0) | 2019.04.30 |
캐나다 장로교단 목회자 대회 (0) | 2019.04.23 |
코치 & 신앙인 토니 베넷 (0) | 2019.04.10 |
어느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2019 봄 음악회 (0) | 2019.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