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아기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수많은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출근 준비를 끝낸 딸아이가 다섯 달 된 아들을 안고 젖병을 물린다. 탁자에 눕혀 기저귀를 갈아준 후 아가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기는 엄마 얼굴을 응시하며 까르르 웃는다.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애잔하다.
딸은 친정엄마에게 아들을 맡기고 문을 나선다. 손주를 껴안은 할머니는 문 앞에 서서 “아가야 엄마 잘 다녀오세요 해야지, 딸아 조심해서 운전하고 잘 다녀와”라고 말하며 문을 닫는다.
캐나다의 경우 생활비가 많이 드는 편이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벌어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남편이나 아내 한쪽만 일해도 수입이 충분하여 다른 한쪽은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부부가 함께 벌어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다. 집을 사느라 빌린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이를 모기지라 한다), 또는 월세만 하더라도 이천 불이 넘는다. 차량 운영비, 통신비, 보험료 등을 따지면 월 오천 불은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일하는 시간 동안 어린 자녀를 보모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 돌보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정 직종의 경우 일하는 남녀의 비율이 동등하다. 기업에서는 여성 CEO나 여성 임원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요즈음은 남편이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담당하고 아내가 밖에서 일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능력과 가능성을 따져 더 나은 쪽으로 밀어주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웃이 해 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똑똑한 자녀를 둔 부모는 자식을 잃었다고 생각해야 한단다. 잘난 자녀는 부모와 떨어져 멀리 가서 일하기에 자식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미국이든 캐나다든 동남아든 서슴없이 떠나기에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다. 캐나다로 이주하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쉽게 승낙해 주셨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아들의 생각을 미리 아셨고, 자녀를 새로운 환경에서 키워보겠다는 마음을 이해해주셨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자식이, 그것도 맏이가 외국에 나가 살겠다고 하는 결정을 승낙하셔야 했던 아버님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하다.
서울로 가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시골 동네에서는 자랑이었을 것이다. 잘 나가던 아들이 가족과 함께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으셨을까. 연고라고는 없는 곳으로 이주하여 터를 잡아보겠다는 아들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설치셨으리라.
아버님께서는 고산 당숙 어른께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하셨다. 당숙 어른은 아버님의 사촌 형님으로 당시 집안 대소사에서 제일 큰 어른으로 존중받던 분이셨다. 당숙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국에서 살아도 누구보다 잘살 수 있을 터인데 네가 왜 그런 결심을 하였느냐.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으면 돌이키거라. 맞이인 네가 떠나면 네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은 어떻게 하느냐. 집안에 네가 없으면 안 되느니라. 내가 아는 어떤 집의 자녀는 호주인가 하는 나라로 이민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어린 아들을 잃었다고 들었다. 낯설고 물선 환경에서 살기도 어려울뿐더러 조상 대대로 사는 이 땅, 조상들이 태어나고 묻힌 이곳을 떠나서는 결코 안 되느니라. 선산이 있는 여기를 그리 쉽게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다.”
당시의 결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내 자녀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있은 힘을 다하여 한두 해 어학연수를 보낼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북미대륙에서 공부하고 자라 현재의 커리어를 가지게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아들을 두고 출근해야 하는 딸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 터이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달만 참으면 어느 정도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을까. 일 년이 지나면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있을 터이고 낮에는 데이케어(day care, 어린이집 같은 곳)에서 또래와 어울리며 커갈 수 있으리라. 퇴근 후 저녁 시간부터는 엄마가 직접 아기를 돌보아 주니 아기와 함께 퀼리티 타임을 가질 수도 있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십 년 이상 공부에 몰입하고 실습을 거쳐 이루어 낸 지금의 자리는 결코 쉽게 얻어진 자리가 아니다. 전공의나 전문의 과정에 있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자녀를 잘 돌보는 일이 중요한 만큼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도 귀하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나무가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이유는 바람 때문이다. 바람에 자꾸만 흔들리니까 그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나무뿌리를 깊게 하는 또 하나는 가뭄이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야 물을 얻을 수 있기에 또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바람과 가뭄이 나무의 뿌리를 깊게 한다.
어쩌면 세상에 나온 지 오 개월 된 손주에게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시간이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바람이요 가뭄일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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