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나이아가라 협곡을 걸으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1. 11. 6. 02:27

 년 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만 보를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제는 일주일에 삼사일 정도 걷는 듯하다.

 포트 이리에서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 가을 정취도 즐길 겸 나이아가라 절벽 아래 트레일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친 후 하이웨이 420쪽을 향하다 차를 돌려 월풀(Niagara Whirlpool)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절벽 아래로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든 철제 구조물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린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풍광에 숨이 막힌다. 나이아가라 협곡을 따라 흐르는 강물이며 절벽 주변에 심긴 나무와 숲, 이 장엄한 풍경을 혼자서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이 시간 아내는 손주 제영이와 씨름을 하고 있을 것 아닌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켜가며 구조물의 손잡이를 잡고 한발 한발 아래로 내려가 지면에 닿았다. ! 땅을 밟는 즐거움. 지층이 융기하여 절벽을 이룬 바위를 끼고 에디 트레일(*Eddy Trail)을 따라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크고 작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거친 바위 사이에서 자라 숲을 이룬 나무 한 그루 한그루가 귀하고 정겹다.

 낙엽의 수군거림이 들리는가 싶더니 도도한 강물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강에 가까웠다는 증거이다. 비릿한 냄새가 훅하고 밀려온다. 어릴 적 강변에서 물장구치며 놀 때 맡던 냄새가 아닌가. 몸은 마치 각인이라도 한 것처럼 어릴 적 맡았던 강물 냄새를 기억해 냈다.

 강변을 따라 난 월풀 트레일(*Whirlpool Trail)을 걸었다. 바위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니 젊은 시절 주말이면 올랐던 불암산 자락이 떠오르기도 했다. 놀랍고 신비한 풍경에 빠져들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모든 트레일에는 그 트레일만이 갖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있겠다. 나이아가라강을 끼고 조성된 이 트레일 또한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마치 긴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주는 듯하였다. *걷고 있는 지점도 과거 어느 시점에는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가 있지 않았을까.

 너른 바위 위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강물은 수천 년 지금의 모습으로 흐르고 흘렀을 것이다. 눈을 감고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원주민 부족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월풀에 다다랐다. 병풍처럼 둘러싼 나무에 단풍이 절정이다. 둥글게 돌아간다고 하여 월풀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빠르게 흐르던 강물은 삼십팔 미터 깊이의 큰 소용돌이를 만나 원을 그리며 숨을 고른 후 방향을 바꾸어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갈매기 무리가 강 위에 앉았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며 놀이를 한다. 오징어 게임이라도 하는 것일까.   

 멀리 낚싯대를 드리우고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반가웠다. 트레일을 걷는 동안 처음 본 사람이 아니던가. 방향을 바꾸어 돌아오는 길에 한 사람을 더 만났다. 유럽에서 왔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해그리드와 닮아있었다. 세 시간여 트레일을 걷는 동안 단 두 사람만을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어쩌면 천 년 이천 년 전에도 나이아가라강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트레일을 걸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노래와 향연에 빠져들었고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것인 양 들떠 있었다.

 

* 에디 트레일(Eddy Trail) : 트레일의 표시는 물고기 그림이다.

* 월풀 트레일(Whirlpool Trail) : 트레일의 표시는 물이 흐르며 도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달팽이 모양과 유사하다.

* 나이아가라 폭포는 떨어지는 물의 흐름에 의하여 연간 삼십 센티 가량 깍이며 뒤쪽으로 움직인다.

* 루비우스 해그리드(Rubeus Hagrid) : 조엔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 호그와트에서 퇴학당하고 마법 사용 자격을 박탈당한 채 호그와트의 숲지기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