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시인의 시 ‘국수’를 읽으니 오일장이 열리던 반야월장(안심장) 우시장이 떠오른다.
말뚝에 묶인 소들은 콧김을 내뿜으며 겁에 질린 채 눈망울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무리 지어 모여 떠들썩 이야기를 나누던 소 주인 모습도 보인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장에 내어놓은 허전함을 달래려 했던 것인가. 사람들은 장 안 국밥집으로 모여들었다. 천막으로 된 국밥집 모퉁이 문으로 주모 아지매가 잰걸음으로 오갔다. 밖에는 반쯤 열려진 가마솥 두 개가 걸려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났다. 천막 안쪽 낮은 탁자 위에는 머리 고기와 수육, 순댓국이 놓여있었다. 길쭉한 판자로 만든 나지막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불콰한 얼굴로 떠들어 대던 아저씨 아주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둘도 없는 단골이었고 국밥집 주인 내외와는 특별히 친한 사이였다. 장날이 되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국밥집 주변을 서성이곤 하였다. 혹시나 아버지를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천막 밖으로 나오신 아버지가 먹고 싶은 것 사 먹으라며 동전 몇 잎 건네주시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국수가 먹고 싶다/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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