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랄 때 부모님은 ‘공부해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내 이름이 '공부해' 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큰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을 잘 잡아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볼 때마다 공부하라고 하시는 부모님의 채근이 몹시 싫었다.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긴 건 제대하기 6개월 전쯤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스무 살이 훌쩍 넘었을 때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겨났다. 가정을 이루고 살려면 공부를 제대로 하여 직장을 잡는 길밖에 없었다. 이후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다.
다행인 것은 늦게 철든 대신 ‘평생 공부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 순간 깨닫고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지한 깨달음과 자각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나 보다.
아울러 작은 독려나 채근보다 큰 그림을 보여주고 깨닫게 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내와 나는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공부를 청소년 시절보다 지금 더 재미있게,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똑 같은 말이라도 억지로 불려가서 들으면 잔소리가 되고, 스스로 찾아가서 요구하면 조언이 된다는 말이있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우 만난 아침 (0) | 2022.02.22 |
---|---|
불평 (0) | 2022.02.21 |
장날 (0) | 2022.02.16 |
포인세티아 (0) | 2022.02.15 |
나이아가라를 지나며 (0) | 202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