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눈 내린 날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2. 12. 17. 00:24

밤늦게까지 눈이 내렸다. 15 센티 가량 내린 듯하다. 아침에 도로 사정이 나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밤새 깨끗이 치워 통행에 지장이 없었다. 눈 치우기 월드컵이 있다면 아마도 토론토 사람들이 유력한 우승 후보일 터이다.
집집마다 눈 치우는 광경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집은 스노 블로어라는 장비를 이용하고 어떤 집은 큰 삽을 이용하여 눈을 퍼낸다. 온 가족이 함께 눈을 퍼내는 집도 있고 남자 혼자 열심히 눈을 치우는 집도 있다. 우리 집의 경우는 주로 혼자서 퍼내는 편이다. 눈 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개 한 시간 내외. 나이 드신 분들만 사는 가정은 사람을 고용하여 눈을 치우기도 한다. 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주택에서 콘도(한국으로 치면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눈을 치우고, 잔디를 깎고, 집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저녁에 한 번 오늘 아침에 한 번 두 번에 걸쳐 눈을 모두 치웠다.
나이아가라 지역은 오늘 저녁 25센티가량 눈이 내릴 것이라 한다. 연접한 버펄로도 더 왔으면 왔지 적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 서너 편 올려놓는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출처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열림원, 2002.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 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서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 정호승 시인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 김용택>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만가만 가서 내립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고 싶어요

아침부터 눈이 와
내리는 눈송이들을 따라가 보며
당신이 더 그리운 날
그리움처럼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들을 보며
뭔가, 무슨 말인가 더 정다운 말을
드리고 싶은데
자꾸 불어나는 눈 때문에
그 말이 자꾸 막힙니다


<첫눈/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젯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 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단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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