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반성문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2. 20. 01:27

<반성문/한소>

나귀를 나비라 하고
딸기를 따기라 하는
너를 보며

잘했다 장하다
우리 아기 어쩌면
이렇게 똑똑하니

똥을 싸도
아이고 우리 아기 똥 쌌구나
예쁘게 말하며 기저귀 갈아주고
똥 닦아 주는데

사  남매 물고 빨며
예쁘다 잘한다 장하다
손뼉 치며 기뻐하셨을 엄마

문고리에 손가락 쩍쩍 달라붙는 동지섣달
찬물에 손 담그고 똥기저귀 빨아
빨랫줄에 너셨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려고
소처럼 일 하셨던
우리 엄마 구십

이제는
엄마가 달라졌다며
이것도 안 드시면 도대체 어떻게 해요
소리를 지르지

엄마가 날 키울 때는
수백 번 잘 못 말해도
수십 번 똥을 싸도
장하다 이쁘다 하셨을 텐데

제 식구들 데리고 잘 살아보겠다며
외국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큰 자식
그것도 자식이라고 밤낮으로 중얼중얼
이름 부르실 우리 엄마


<별을 그대 가슴에/나태주>
나에게 희망에 있다고
말해주세요
나에게 내일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나에게 사랑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왜 우리는 이런 작은 말에도
목이 메일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이미 사라진 별이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별1/나태주>
너무 일찍 왔거나 너무 늦게 왔거나
둘 중에 하나다
너무 빨리 떠났거나 너무 오래 남았거나
또 그 둘 중에 하나다

누군가 서둘러 떠나간 뒤
오래 남아 빛나는 반짝임이다

손이 시려 손조차 맞잡아 줄 수가 없는
애달픔
너무 멀다 너무 짧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잡히지 않는다

오래오래 살면서 부디 나
잊지 말아다오


<별2/나태주>
제비꽃같이
꽃다지같이

작고 못생긴
아이

왜 거기
있는 거냐?

왜 거기 울먹울먹
그러고 있는 거냐?


<개양귀비/나태주>
생각은 언제나 빠르고
각성은 언제나 느려

그렇게 하루나 이틀
가슴에 핏물이 고여

흔들리는 마음 자주
너에게 들키고

너에게로 향하는 눈빛 자주
사람들한테도 들킨다


<꽃그늘/나태주>
아이한테 물었다

이담에 나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쾌청/나태주>
참 맑은 하늘
그리고 파랑

멀리 너의 드높은
까투리 웃음소리라도
들릴듯…


<꿈/나태주>
네가 보이지 않아
불안해졌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눈을 떠보니
볼 위에 눈물이 남아 있었다


<일요일/나태주>
너 어디쯤 갔느냐?
어디만큼 가
바람을 보았느냐?
꽃을 만났느냐?
꽃 속에 바람 속에
웃고 있는 나
보지 못했더냐?


<제비꽃/나태주>
눈이 작은 아이 하나
울고 있네
흐린 하늘 아래

귀가 작은 아이 하나
웃고 있네
해가 떴다고


<구름/나태주>
구름 높은 구름
좋다 내 마음도 높이 떴다

구름 하얀 구름
좋다 내 마음도 하얗다

거기 너도 있다
좋다 너도 웃는 얼굴이다


<못난이 인형/나태주>
못나서 오히려 귀엽구나
작은 눈 찌푸러진 얼굴

에계계 금방이라도 울음보
터뜨릴 것 같네

그래도 사랑한다 얘야
너를 사랑한다


<퐁당/나태주>
어제는 너를 보고 조약돌이라고 말하고
오늘은 너를 보고 호수라고 말했다
어제 조약돌이라고 말한 너를 집어들어
오늘 호수라고 말한 너를 향해 던져본다
이래도 말을 하지 않을 테냐, 퐁당!


<날마다 기도/나태주>
간구의 첫 번째 사람은 너이고
참회의 첫 번째 이름 또한 너이다


<첫눈/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젯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 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혼자 있는 날/나태주>
아침에도 너를 생각하고
저녁에도 너를 생각하고
한낮에도 너를 생각한다

보이는 것마다 너의 모습
들리는 것마다 너의 모습

너, 지금
어디 있느냐?


<별처럼 꽃처럼/나태주>
별처럼 꽃처럼 하늘에 달과 해처럼
아아, 바람에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처럼
곱게 곱게 숨을 쉬며 고운 세상 살다가리니,
나는 너의 바람막이 팔을 벌려 예 섰으마


<한 사람 건너/나태주>
한 사람 건너 한 사람
다시 한 사람 건너 또 한 사람
애기 보듯 너를 본다

찡그린 이마
앙다문 입술
무슨 마음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못나서 사랑했다/나태주>
잘나지 못해서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베길 수 없어서 사랑했다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물을 마셔도 목이 말라서
사랑했다

사랑은 밥이요
사랑은 물

바람 부는 날 바람 따라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사랑했다
흐르는 강가에서 물 따라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
사랑했다

사랑은 공기요
사랑은 꿈
너 또한 잘난 사람 아니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못나서 안쓰럽고
안쓰러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여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네가 되었다

사랑은 꽃이요
사랑은 눈물


<살아갈 이유/나태주>
너를 생각하면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다
힘이 솟는다

너를 생각하면 세상 살
용기가 생기고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인다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의 가슴은 따뜻해지고
너의 목소리 떠올리면
나의 가슴은 즐거워진다

그래,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나님께 죄 한번 짓자!
이것이 이 봄에 또 살아갈 이유다


<사진을 자주 찍다/나태주>
내 눈빛이 닿으면
너는 살아서 헤엄치는
물고기

좋아요 좋아요
물을 거슬러
이리로 오기도 하고

싫어요 참말 싫어요
물길을 따라서
도망치기도 한다

오 눈부신 은빛
파들파들 햇빛 속에
몸을 뒤치는 비늘이여
지느러미여

- 나태주 사랑 시집 <별빛 너머의 별> RHK 刊, 202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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