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토요일에도 일해요(유현아) 외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8. 21. 06:57

<토요일에도 일해요/유현아>
아직도 토요일에 일하는 곳이 있어요?
라는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어요

계절을 앞서가며 미싱을 밟지만 생활은 계절을 앞서 가지 못했지요

어느 계절이나 계절 앞에 선 그 사람이 있었어요
수녀복 만들 때에도, 신사복 만들 때에도, 어린이복 만들 때에도
익숙한 손가락은 미싱 바늘을 타고 부드럽게 움직였어요

단 한 번도 자기 옷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요

여름엔 에어컨을 틀기 위해, 겨울엔 난방기를 틀기 위해 창문을 닫았어요
떠다니는 실밥과 먼지와 통증들은 온전히 열려 있는 창문 같은 입으로 들어갔어요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그의 몸 여기저기서 튀어나왔고
가끔은 미싱 바늘이 검지를 뚫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일요일이 즐겁기 위해 토요일에 일해요,라고 대답했어요
끝에는 끝이 없었다고 답하고 싶었지만

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 있어 안 보일 뿐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토요일의 무게감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싹싹하게 명랑하게 아픔을 이야기하는 그의 입 앞에서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창비, 2023)


<슬픔의 자전/신철규>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 차 있다

타워 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주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떨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글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 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아름다운 어항/채길우>
숙모가 가져온 네모난 어항 속
세 마리 금붕어
유리벽을 건드리면 화들짝
몸을 뒤트는 것이 좋았다
쾅쾅 세게 때려도
유리는 깨지지 않았고
금붕어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눈 깜빡이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지느러미를 펼치고 바닥에 누우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워주는 수심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어떤 소리조차 들리자 않는 선명함과
햇살이 비추어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는
이곳과는 상관없는 형형색색의 유선형을 뽐내며
누군가 똑똑 창을 두드리는 기척에도
내가 더 멀리 나가보지 않을 때

삼촌이 치는 것도
투명한 유리일 뿐이고
나는 놀라지 않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금붕어이다
툭 튀어나온 눈, 쉬지 않고
우물대는 입술과 모난 이마의
무슨 일에도 웃는 얼굴로
퉁퉁 부은 거울에 비친
나는 여러 마리 금붕어이다

물 위로 떠오른 금붕어를 건저 내
변겨에 넣고 내리면
어지러운 색들이 빙글빙글 돌아
섞이고 사라지던 황홀한 나날들
텅 빈 표정 안으로 굴절되는 빛을 피해
귀를 막고 코를 쥐고 입을 벌리면
외침으로 만든 거품들이 끓어올라
왜곡된 투명이 거울처럼 가득 찬 집으로부터
숙모를 기다리는 부력만으로도
황금의 물결 새를 헤엄쳐
흘러가기 위하여
곤두선 비늘과 꼬리를 흔들며
숨을 쉬면 혼잣말로 벌어지던 물빛, 그리고
얼룩진 피부에 어린 수면 아래
웃자란 아가미의 시절들
-현대시 2018년 1월호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책으로 묶어낸 ‘담론’을 읽고 있다. 오늘 아침은 4장(쳅터 4) ‘손때 묻은 그릇’을 읽었다. 선생은 4장에서 ‘주역(周易)’을 소개하고 있다. 신 교수는 학부에서 강의를 끝낸 후 강의 내용을 5분 내로 요약해 보라는 과제를 준다고 했다. 방대한 내용을 한 페이지, 한 단락, 한 줄, 한 단어로 요약해 보는 건 좋은 공부방법일 터. 앞으로 개인적으로도 설교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적용해 보겠다.
주역이 과거의 규칙성에 주목하여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책(세계 운동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서술로 소개)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개인을 관계 속에서 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일이라는 이름 속에서 그가 첫째 아들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 어떤 분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 읽은 4장의 일부를 소개한다.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을 소개하는 것을 끝마치겠습니다.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입니다.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시각을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 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완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의 덕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덕목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단연 ‘겸손’입니다.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의 지산겸(地山兼) 괘는 땅속에 산(山)이 있는 형상입니다. 땅속에 산이 있다니 자연현상과는 모순인 듯합니다. 해설에는 ‘땅속에 산이 있으니 겸손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더하고 사물을 알맞게 하고 고르게 베푼다’라고 합니다. 우뚝 솟은 산을 땅속에 숨기고 있어서 겸손하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산을 덜어서 낮은 곳을 메워 평지로 만드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겸손은 높이 있을 때 빛나고 낮은 곳에 처할 때에도 사람들이 함부로 넘지 못한다. 그러기에 겸손은 군자의 완성이다. 가히 최고의 헌사라 하겠습니다.’  - 신영복 저 '담론' p7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