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새와 한그루 탱자나무가 있는집(문태준)외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8. 7. 22:24

<새와 한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문태준>
오래된 탱자나무가 내 앞에 있네
탱자나무에는 수많은 가시가 솟아 있네
오늘은 작은 새가 탱자나무에 앉네
푸른 가시를 피해서 앉네
뾰족하게 돋친 가시 위로 하늘이 내려앉듯이
새는 내게 암송할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네
그 노래는 가시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듯하네
새는 능인(능할能어질仁)이 아닌가
새와 가시가 솟은 탱자나무는 한덩어리가 아닌가
새는 아직도 노래를 끝내지 않고 옮겨 앉네
나는 새와 한 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에 사네

<기다리는 사람/최지인>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고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들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 화분도 여러 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 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도 한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고 그 구멍 속으로 한 계단 한계단 내려가다 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뜻해지길 기다렸다


날씨가 쌀쌀해졌다. 새벽엔 두꺼운 이불을 덮었는데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8월 초인데 해가 짧아졌고 아침저녁으로 긴소매 셔츠와 두터운 바지를 찾아 입게 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 새로운 계절을 맞는 설렘도 있다. 파리올림픽도 절정을 지나고 있고 사흘 후면 폐막한다. 아침햇살이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의 가을 햇살처럼 느껴진다. 36년 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때 큰딸 지혜는 돌잔치를 한 지 육 개월이 지난 때였고 둘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때였다. 버펄로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는 88 서울 올림픽 때 선희 아가씨랑 경기장을 다니던 이야기를 했다. 여분의 표를 경기장 주변에서 팔던 일이며 수영경기를 관람하던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나 또한 여자 단식 테니스 결승 경기를 관람하던 때의 기억이 또렷했다. 2024년 8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