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일컬어 “그는 참 균형감각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대단한 칭찬입니다. 현대 사회는 기술발전 속도와 환경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이런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균형감각을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바람직한 리더가 되려면 반드시 균형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리더가 사물이나 현상의 한 단면을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우(愚)를 범한다면 많은 추종자를 곤경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합니다. 주어진 경영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여 기술개발, 시장개척, 자금관리 등의 업무를 균형적으로 수행해 가야만 훌륭한 경영자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은 성공적인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 각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시련과 도전에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련과 도전에 맞닥트릴 때 균형감각이 없다면 낙오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덜하지만 서방선진국의 경우 정신적인 장애자들이 참 많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정신적인 어려움은 그들로 하여금 균형감각을 잃게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즉 컴퓨터 앞에 앉아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물건을 구입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채팅을 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절 역시 균형감각을 잃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핵가족 제도의 발달, 이혼의 증가와 결손가정의 증가는 또 다른 차원의 사회문제를 야기하여 균형감각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에도 균형감각, 즉 인테그리티(integrity)가 있다는 표현은 큰 칭찬이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균형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식, 건강, 사회적지위, 경제력, 사람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원만하며 여유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며 이러한 것을 골고루 갖춘 사람은 분명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는 전문가 시대입니다. 각 분야에 뛰어난 식견과 경험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크게 대접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자기가 맞은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가졌던 발명에 대한 집념과 노력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 균형감각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예절을 갖추는 것이나 문학작품에 관심을 가져 책을 읽는 것이나 음악이나 시를 읽는 것 등 감성적인 측면의 발달 역시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훌륭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인간적인 결핍이 있다면 그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숲은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거나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옛날 산양을 기르는 어떤 마을에 늑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늑대가 산양을 잡아먹자 마을 사람들은 늑대를 보는 대로 죽였습니다. 산양은 마을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늑대가 없어진 이 마을에 산양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산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산양의 먹이인 풀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산양들은 풀이 부족해 지자 풀뿌리까지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결국 산에는 풀이 메말랐고 먹이를 찾지 못한 산양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보이는 대로 죽인 것은 산양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타났습니다. 늑대를 죽이자 산양까지 모두 죽어버린 것입니다. 늑대를 죽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산양을 보호할 수 있었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양을 모두 잃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산양의 피해만 생각하고 늑대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한 탓입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존중하지 않고 늑대를 무차별하게 죽인 것은 한 단면만 본 결과입니다. 산양, 늑대, 풀, 주민간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제대로 파악만 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라도 산양의 수와 풀의 상태를 피드백시켜 대책을 수립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시스템적인 사고를 하는 일은 개인의 삶이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좁은 영역 즉 한 부분이나 부서의 관점에서 보면 옳은 행동도 넓은 영역에서 즉 전체나 시스템적 영역에서 보면 옳지 않은 경우도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은 균형감각을 가진 경영자입니다. 그는 공직자로써 은퇴한 후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왜 절망하십니까’라는 그의 저서는 고생 끝에 기업을 일군 경험이 실려 있으며 필자의 첫번째 저서 ‘37세 MBA도전’과 함께 신문지상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벤처기업가로서 본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최근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자신에게 두 명의 장성한 아들이 있었지만 부를 세습 시키지 아니하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스스로 한 약속을 보란 듯이 지켰습니다. 정직하고, 정도를 걷는 경영자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고생 끝에 일구어낸 알토란 같은 기업을 피붙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문술 사장의 경영철학과 균형감각에 의한 멋진 의사결정은 암울하기만 한 정치적 현실과 부도덕이 만연한 기업과 사회에 한 줄기의 빛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바람직한 리더가 되려면 반드시 균형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리더가 사물이나 현상의 한 단면을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우(愚)를 범한다면 많은 추종자를 곤경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합니다. 주어진 경영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여 기술개발, 시장개척, 자금관리 등의 업무를 균형적으로 수행해 가야만 훌륭한 경영자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은 성공적인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 각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시련과 도전에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련과 도전에 맞닥트릴 때 균형감각이 없다면 낙오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덜하지만 서방선진국의 경우 정신적인 장애자들이 참 많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정신적인 어려움은 그들로 하여금 균형감각을 잃게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즉 컴퓨터 앞에 앉아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물건을 구입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채팅을 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절 역시 균형감각을 잃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핵가족 제도의 발달, 이혼의 증가와 결손가정의 증가는 또 다른 차원의 사회문제를 야기하여 균형감각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에도 균형감각, 즉 인테그리티(integrity)가 있다는 표현은 큰 칭찬이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균형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식, 건강, 사회적지위, 경제력, 사람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원만하며 여유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며 이러한 것을 골고루 갖춘 사람은 분명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는 전문가 시대입니다. 각 분야에 뛰어난 식견과 경험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크게 대접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자기가 맞은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가졌던 발명에 대한 집념과 노력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 균형감각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예절을 갖추는 것이나 문학작품에 관심을 가져 책을 읽는 것이나 음악이나 시를 읽는 것 등 감성적인 측면의 발달 역시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훌륭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인간적인 결핍이 있다면 그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숲은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거나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옛날 산양을 기르는 어떤 마을에 늑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늑대가 산양을 잡아먹자 마을 사람들은 늑대를 보는 대로 죽였습니다. 산양은 마을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늑대가 없어진 이 마을에 산양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산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산양의 먹이인 풀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산양들은 풀이 부족해 지자 풀뿌리까지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결국 산에는 풀이 메말랐고 먹이를 찾지 못한 산양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보이는 대로 죽인 것은 산양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타났습니다. 늑대를 죽이자 산양까지 모두 죽어버린 것입니다. 늑대를 죽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산양을 보호할 수 있었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양을 모두 잃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산양의 피해만 생각하고 늑대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한 탓입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존중하지 않고 늑대를 무차별하게 죽인 것은 한 단면만 본 결과입니다. 산양, 늑대, 풀, 주민간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제대로 파악만 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라도 산양의 수와 풀의 상태를 피드백시켜 대책을 수립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시스템적인 사고를 하는 일은 개인의 삶이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좁은 영역 즉 한 부분이나 부서의 관점에서 보면 옳은 행동도 넓은 영역에서 즉 전체나 시스템적 영역에서 보면 옳지 않은 경우도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은 균형감각을 가진 경영자입니다. 그는 공직자로써 은퇴한 후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왜 절망하십니까’라는 그의 저서는 고생 끝에 기업을 일군 경험이 실려 있으며 필자의 첫번째 저서 ‘37세 MBA도전’과 함께 신문지상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벤처기업가로서 본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최근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자신에게 두 명의 장성한 아들이 있었지만 부를 세습 시키지 아니하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스스로 한 약속을 보란 듯이 지켰습니다. 정직하고, 정도를 걷는 경영자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고생 끝에 일구어낸 알토란 같은 기업을 피붙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문술 사장의 경영철학과 균형감각에 의한 멋진 의사결정은 암울하기만 한 정치적 현실과 부도덕이 만연한 기업과 사회에 한 줄기의 빛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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