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ctice·청소년

제발 너나 잘 사세요 (따온 글)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6. 1. 23. 21:23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에게 상담차 호송(?)되어 온 승모라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이가 컴퓨터 오락에 빠져 학교를 등한시하고 심지어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거짓말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가 사악한 길에 접어드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또 엄마와 만나보니 승모는 극히 정상이었다.

엄마는 나와의 만남 뒤에도 속을 끓여가면서 아이에게 뭔가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셨다. 그럼에도 승모에게 엄마가 원하는 식의 뚜렷한 변화가 없는 채로 시간이 얼마쯤 흘렀다. 그 뒤 승모 엄마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아이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래서 승모네는 이산가족이 되고 승모 아빠는 말 그대로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언젠가 승모 엄마는 결단을 내렸고, 승모만을 남겨놓은 채 한국에 돌아왔으며, 승모는 혼자 아직도 미국이라는 곳에 살면서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 승모가 의젓한 모습으로 지난해 말 한국에 잠깐 다녀갔다.

- 자녀는 종속아닌 동반자관계 -

내 자식 없고, 또 자식 한 번 낳아 키워본 적도 없는 녀석이므로 속 편한 소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너도 네 자식 낳아 키워보면 다를 것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오히려 자식 없는 사람이라는 자유로움으로 배짱 좋게 몇 마디 사설을 붙이고 싶어진다.

첫째, 우리 부모님들은 제발 자신들의 인생이나 잘 사시고 챙기셨으면 좋겠다. 자식들을 위한 인생을 살지 말고 자신들을 위한 인생을 사시라는 것이다. 시쳇말로 하자면 ‘제발, 너나 잘 사세요’ 하는 말이다.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자식들 교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이런 경우의 부모님들은 부모라기보다 새끼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 새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들이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조바심 내면서 끊임없이 발톱을 세우는 동물의 어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둘째,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그 관계가 종속관계나 상하관계 내지는 소유관계가 아니며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같은 관계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손자를 보신 동네 할머니들이 문 앞에 금줄을 치시면서 ‘우리 집에 아기 손님이 드셨다’고 하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조물주께서 부모와 자식으로서 일정 기간 함께 의지하고 기쁨을 나누며 살아가라는 소중한 손님 같은 관계요, 인연이다. 자녀를 손님으로 대한다 함은 내 식대로 아이를 만들고 싶어 하는 부모와 이에 반항하는 아이들의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 손님과의 관계는 마음이 오고 가는 정중함과 예를 갖춰 대접해야 하는 사이이다. 그래서 교육은 마음의 일이다.

- 행복하게 사는 모습 보여줘라 -

셋째,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부모님들은 잘 생각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내가 못 배웠으니 자식들만이라도 잘 가르쳐야 되겠다고 하고, 내가 배고프고 못 살았으니 자식들만이라도 잘 살게 해 주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믿을 것이 결국 내 자식밖에 없다’는 식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발상이요, 스스로 못남을 드러내는 치졸함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와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식을 둔 부부간에 아름답게,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자기도 그 엄마나 아빠처럼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방학기간 중 공항에 가면 외국에서 공부하는 애들이 오고가는 광경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언젠가 방학기간에 외국으로 부인과 함께 자식을 떠나보내고 난 뒤, 쭈그리고 앉아 창문 밖을 멍하니 내다보면서 “도대체 이게 뭔 지랄인지 모르겠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쓸쓸한 어떤 아빠의 모습이 오랜 기간 지워지지 않는다.

〈김건중/살레시오 수도회 신부〉

 

-2006년 1월 21일 경향신문 '낮은 목소리로'에서 따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