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야생화 찾아 다니는 은퇴인생(따온 글)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6. 8. 17. 12:31

2002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이익섭 명예교수(국어학) 사진에 반해 버렸다. 2004년부터다. 1 먼저 은퇴 인생을 시작한 이상옥 교수(영문학) 단짝으로 번씩은 12일로 산을 다닌다. ‘인디카라는 야생화 사진 동호회 멤버들과 당일 코스를 다니기도 한다. 회비라고 해야 1~2만원. 디지털카메라를 쓰니 필름값 부담도 없다. 가끔 번개모임이니 해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보면 괜찮다.

 도시를 떠난 맛을 모른다. 무슨 꽃인지도 모르고 찍어온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올려 놓고 식물도감 뒤지며 이름 맞혀 나갈 때의 통쾌함도 모를 것이다. 작년에 봤던 꽃을 잊어 올해 다시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에 꽃말도 붙이고 전설도 찾아 달고 해서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보내 준다. 요즘은 다니는 아름답습니다, 부럽습니다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이 교수가 야생화 사진의 대가로 꼽는 사람이 문순화씨 야생화에 눈뜨면서 꽃이 예쁜 알게 됐다. 깊은 바위 같은 데서 꽃을 만나면 보물을 찾아낸 아찔한 기분이다. 카메라 파인더로 들여다보면 꽃술 하나하나가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다. 교수가 2년간 찍은 들꽃, 산꽃이 300종쯤 된다. 꽃마다 얼마나 개성이 다른지 모른다. 창조주는 단조로운 것을 배겨하는 틀림없다고 교수는 말하고 다닌다.

     주책 떤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덤불 가시 긁혀 가며 산을 헤매니 그런 들을 만하다. 하지만 속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손주 여섯 올해 일흔셋의 할아버지다. 70년대 말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니 30년이 간다. 1992 공무원 생활을 은퇴한 뒤로는 전업 수준으로 산행을 왔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일도(북한산) 있고 다리가 접질리기도(주왕산) 해봤다. 설악산에선 발을 헛디뎌 주저앉았는데 뭉클 해서 보니 하필 뱀을 깔고 앉았다.

      천마산, 화야산 같은 곳을 문씨와 함께 다녀 봤다는 교수에 따르면 문씨는 어느 어느  골짜기에 무슨 꽃이 있다는 꿰고 있다. 모양만 예쁘게 찍는 초심자들과는 찍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이파리나 줄기의 작은 변이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다. 식물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그래도 학자들이 문씨에게 와서 사진이니 표본을 얻으면서 도움말을 듣는다. 문씨는 식물원 사진은 찍어 일이 없다. 비바람 맞는 험한 곳에 사는 꽃이라야 향기도 짙고 색깔에 윤이 난다. 벌과 나비를 부르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거름 주면서 키운 꽃은 아름답기가 어렵다.

      경기도 분당 문씨 아파트는 야생화 찍은 슬라이드 필름으로 있다. 거실 필름장엔 서랍이 20 달렸고 서랍마다 필름이 다섯 줄씩 가득이다. 얼른 계산해 봤더니 줄로 세우면 50미터 길이다. 슬라이드마다 분류 번호와 찍은 , 찍은 곳이 적혀 있다. 영국엔 식물이 800 있다. 한국엔 3500종쯤 된다고 한다. 문씨는 그중 2500종을 찍었다. 1995년부터는 해를 거르지 않고 야생화 책을 내놨다. 6월에도풀과 나무 200가지라는 책이 나왔다.

      문 선생, 교수 같은 분을 보면 노후를 위해 준비할 것이 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 버려 못하는 일이라는 것도 없다. 자연 속에는 감동이 있다. 필요한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 은퇴는 찾아갈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축복일 수가 있다. 수십 년의 일상이 만들어 놓은 자기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새로운 자기 모습을 쌓아 가는 인생이 풍요롭지 않을 수가 없다.

 

<2006년 8월 17일자 조선일보 한삼희의 환경컬럼에서 따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