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서지 마라

     ‘돈 빌려주지 말라’, ‘보증서지 말라’, ‘가능한한 많이 베풀어라’ 친구의 아버님이 아들에게 특별히 당부한 유언이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라 생각된다.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이고 억울해한 경험이 대개 한 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친구일수록 돈 거래는 하지 않는다. 돈을 빌려 주려면 차라리 거저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가까운 친구 사이에 돈을 빌려주면 돈 잃고 친구 잃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보증서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보증서면 반드시 문제가 되게 되어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사촌 형이 결혼하자마자 TV를 사겠다고 삼촌인 아버님께 보증을 서달라 요청하였다. 당시만 해도 TV를 할부로 사려할 때 보증인이 필요했다. 그리 큰 돈도 아닌데 아버님은 그것마저 저절하셨다. 그렇게도 보증서는 일을 꺼려하셨고 아예 하지도 않으셨다.

 

      약 10년 전 일이다. 하나뿐인 사위가 아버님께 금융기관으로 부터 사업자금을 빌린다고 땅을 담보해달라고 요구했다. 해주지 않겠다고 버티자 딸까지 집에 와 드러누워 버렸다. 딸 자식도 자식인데 왜 담보를 해주지 않느냐고 울고불고 떼를 썼다. 물론 아들들도 아버님의 자산에 한번도 담보를 부탁한 일이 없었다. 마음이 약해지신 아버님은 우여곡절 끝에 땅을 담보해 주었다. 

    

       담보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사위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1억 5천만원의 돈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혀준 땅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 몫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던 아버님은 큰아들과 막내딸에게 SOS를 요청했다. IMF 직후의 일이라 금리도 높았고 돈 가치도 있을 때였는데 1억 이상이나 되는 생돈을 그저 날렸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위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한푼 두푼 모아둔 알토란 같은 돈을 밀어 넣은 것이다.

      

       보증서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주위에서 수도 없이 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친구나 친척중에서도 보증을 서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예외가 아닐 것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등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6년 4월 말 현재 334만 1000명이 2금융권 채무 179조 6000억원에 대해 보증을 섰다고 한다. 1인당 평균보증금액이 5375만원이나 된다. 아래의 사례는 2006년 9월 25일 동아일보 경제면에 실린 기사이다.

     

       사례 1: 아내와 이혼하고 사글셋방에서 어렵게 사는 김모(39세)씨. 재작년 집주인이 상호저축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 고소를 당할 판이라며 보증을 부탁하자 서류에 손도장을 찍어 줬다. 집주인은 빛을 갚지 못한 채 잠적했고, 김씨는 6000만원의 채무를 떠안게 됬다.

     

       사례 2: 3년 이상 ‘백수’로 지내다 2000년 화물회사에 취직한  최모(52세)씨. 그는 회사로부터 운송료에 대한 보증을 서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아내에게 알리지도 않고 보증을 서줬다. 최씨는 최근 회사를 그만뒀지만 보험회사와의 보증계약을 해지하지 않은 탓에 6000만원을 갚으라는 법원의 통지를 받았다. 

 

      사례3: 교회 부목사인 박모(44세)씨는 1993년부터 10여 년간 19차례나 보증을 섰다. 담임목사의 보증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 총보증금이 3억 2천만원에 이른다. 담임목사가 시기를 친 것으로 드러나자 빚 독촉은 박씨에게 집중 됬다. 살던 집까지 팔았지만 채무는 1억 원 이상 남아있다.

 

       보증을 선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마지못해 보증을 서게된다.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면 사람도 잃고 돈도 잃는다. ‘돈 빌려 주지마라, 보증서지 마라, 가능한한 많이 베풀어라’는 말은 참으로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어 실천해야 할 교훈이다.  (2006년 9월 25일 이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