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또 그만큼 부자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마땅히 비빌 언덕조차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 땅에서 물려받은 돈 없이 부자가 되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몸과 머리를 억지로라도 굴려 돈을 긁어모으는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거부 중 상속형 부자말고는 예외 없이 육신(?)이 고달팠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 전셋값 올려주다 인생 종칠 수밖에 없다. 근래에 올수록 이런 경향은 훨씬 더 커진다. 부자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때문에 좀 살기 좋아졌다고 고삐를 늦추는 부자는 별로 없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그런 건 상관없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돈벌이에 나설 정보와 방법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정세 분석이 대박으로 연결>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박순재(57)씨. 그의 별명은 '뉴스광(狂)'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뉴스를 챙긴 후 경제신문만 또 2개를 정독한다. 지난 10여 년간 계속된 그의 별난(?) 습관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인터넷 검색도 수준급. 평생지기인 부인 최모씨가 "나보다 뉴스를 더 좋아한다"며 붙인 별명이 학원에까지 퍼질 정도다.
박 원장을 만나 건 2003년 4월 하순. 2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벽은 스크랩된 신문쪼가리로 가득했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대뜸 박 원장이 질문부터 쏟아 붇는다. "경제가 어떻게 될까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요. 부동산이 꼭지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취재를 하러 온 건지 취조(?)를 당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잠시 후 박 원장이 궁금해하는 이유를 알았다. 박 원장은 최근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26평형 아파트 두 채(4,500만 원x2채=9천만 원)를 샀다. 팽성은 미군기지 이전 시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대두된 지역. 매입시점은 이전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2003년 1월이다.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분석한 결과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박 원장은 확인 안 된 뉴스라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으로 자신했다. 그의 경험상 이럴 때 밑진 케이스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라크전쟁 여파가 한국에까지 미치자 괜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터뷰 중 몇 번이나 돈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강하게 풍겼다. 부자만의 그런 '돈 냄새'였다. 다행히 가격은 줄곧(2003년 7월 말 현재 5,200만원) 오름세다. 그도 그럴 게 박 원장은 미군부대 주변에 정통했다. 이미 이태원에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이태원 주공아파트 3채(32평형)로 매달 6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받고 있다. 전기요금 등 일체의 관리비가 포함되지만 내국인 상대로 전·월세를 주는 것보다는 훨씬 수익률이 높다. 세탁소에 임대를 준 시가 3억 원짜리 상가도 하나 있다. 불황이라지만 미군부대 지역은 무풍지대인 탓에 가격대로 탄탄하다.
<어떤 뉴스라도 부동산과 연관지어 생각하자>
박 원장은 팽성 아파트도 리모델링해 임대할 작정이다. 이전이 확정되면 인근 고급주택이나 빌라까지 사들여 미군장교 숙소로 세줄 계획이다. 임대사업자는 부인 명의로 했다. 자신에게는 앞으로도 새로운 부동산 사업거리가 많다고 봐서다. 박 원장은 "미군부대 인근 부동산은 여러모로 수익률이 높다"며 이전설·이전확정·이전시작 등 3단계를 통해 꾸준히 가치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군부대 부동산이 박 원장에게 벌어준 돈은 어림잡아 10억 원이 넘는다. 현재 살고있는 압구정 아파트(시가 5억 원)가 대표적. 그가 미군부대에 눈독을 들인 건 7~8년 전 우연히 본 부동산 전문지 기사 때문. "고정수요가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며 997년 부동산 폭락 때 이태원 아파트를 싼값에 샀다. 지금 이 물건이 효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만큼 재료(뉴스)에 민감한 자산은 없다"며 "어떤 뉴스라도 부동산과 연관지으려는 연상법이 특히 중요하다"고 전했다.
<분배정부 출범 전부터 부자들은 대응책 준비>
2002년 12월19일,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노사모 회원들이 광화문에서 잔치를 벌이던 시간, 강남 부자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들의 돈벌이 전선에 심각한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발 빠른 이들은 자산정리에 돌입한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민을 가겠다는 부자도 많았다. 덩달아 금융권은 이들 VIP고객이 원하는 해외 투자처를 찾느라 때아닌 붐을 맞기도 했다. 아무래도 진보(?)성향의 청와대 주인과 기득권 층인 부자와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시범케이스를 겁낸 부동산 거부들은 이미 2002년 12월부터 서서히 포트폴리오 변경에 들어갔다는 게 정설이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동산은 싼값에라도 내놓았고, 자금출처를 피하고자 묻지마 채권에 몇 백억 원씩 묻어두는 게 유행이 됐다.
명의를 바꾸거나 상속·증여는 예정보다 빨리 서둘렀다. 신정부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물밑작업을 끝내는 게 유리해서다. 일부는 이미 대통령 선거 훨씬 이전부터 시나리오별로 자산정리 프로그램을 짜놓았다. 앉아서 희생양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2003년 봄, 부동산 시장은 전환기를 맞았다. 광적인 투기 열기를 막으려는 정부의 5·23 대책이 낳은 결과다. 효과는 일단 가시적이었다. 천장이 따로 없던 강남 아파트 시세는 보합세(혹은 때론 약세)로 돌아섰다. 2002년 9·4 대책보다 몇 배 이상 고강도 투기억제책으로 이해된 탓이다. 투기대책반의 현장감시 활동은 이익 집단인 중개사협회 대정부 협박(?)으로까지 비화됐다. 하지만 부동산 부자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별다른 희생도 없었다.
왜 그럴까? 부자들은 정보가 상당히 빠르다.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루트가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이 변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꽤 힘들어졌다. 관건은 남다른 분석력이다. 일반인이 그냥 흘려버릴 뉴스에서 부자들은 중대한 정보를 잡아낸다. 수년간에 걸친 노하우 덕이다. 결국 이게 재테크 방향을 결정한다. 돈이 된다는 얘기다.
만일 분석능력이 없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고급정보를 찾는다. 부자들 주변에는 이런 컨설팅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신정부의 향후 정책노선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참여정부의 '분배실현을 통한 빈부격차'는 한 마디로 부자들 세금을 빡세게 거두겠다는 듯이다. 속뜻을 알면 대응방안을 찾는 게 가능하다. 세무사·회계사를 고용해 빈틈을 노리는 건 당연지사다. 정부정책에 맞서기보다 이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불패신화는 옛말, 잘 사서 잘 팔아야>
부동산 투자는 정보가 생명이다. 특히, 정부정책과 경기흐름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때문에 부자 치고 경제뉴스를 챙기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때론 기자보다 뉴스접근과 분석력이 빠르다. 뉴스를 통해 향후 변화를 정확히 꿰뚫어야 자신들의 부(富)를 지키고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물정 모르면 큰돈을 벌 수 없다. 경제흐름은 재테크 시장의 바로미터다. 흐름을 잘 타느냐의 여부가 대박과 쪽박을 결정짓는다. 사두면 돈 번다는 부동산 불패신화는 이제 옛말이다. 잘 사서 잘 팔아야 '불패'할 수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나 부동산 거부들은 십중팔구 뉴스에 민감했다. 분석에 자신이 없으면 전문가에게 기꺼이 한 수를 부탁한다. 특이한 건 어떤 분야든 주변에 전문가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네트워크는 생각보다 탄탄했다. 이렇게 되면 뉴스나 정보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에 목말라하는 태도는 공통분모였다.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에 난감했을 때가 많았다.
나이와 무관하게 인터넷을 다루는 솜씨도 훌륭했다. 70세를 넘긴 한 부자 할아버지는 인터넷을 '돈 벌어주는 우물'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할아버지뻘인 그의 인터넷론에 당황(?)한 건 오히려 필자였다. 그 할아버지의 재산은 1천억 원대를 훌쩍 넘긴다. 알려진 것만 강남에 빌딩이 4채다.
<부자의 한마디>
항상 정보에 목말라야 한다. 업황과 관련된 경기·정책일수록 갈망은 더 크다. 돈으로 연관짓는 노하우를 가진 결과다. 뉴스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일반인의 경우 뉴스와 돈은 별개다. 이분법적인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뉴스는 재테크 향방을 판단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연상법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캐나다 한국일보 2006년 9월 30일자 C9면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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