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선물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7. 16. 17:35

  점심시간 틈을 내어 남대문 시장 등산용품 점에 들러 아버님께 드릴 등산용 술통과 컵을 샀다. 앙증맞은 술통에 술을 담아와 산 정상에서 호기 있게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한번 가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관악산에서 만난 80대 할아버지께서도 예쁜 술통에 소주를 가득 담아 오시어 후배들에게 권하셨다. 두어 잔 받아 마시며 술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가죽지갑에서 꺼낸 은빛 술잔 역시 앙증맞았다. 언젠가 나도 가져 봤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3주전 본가(지방)에 들러 아버님과 저녁식사를 외식을 했다. 생선회가 나오자 아버님은 조용히 이것 한잔 할테냐?고 말씀하신다. 꺼내 놓으신 건 꼬냑 헤네시의 샘플 병. 식사를 하러 나가자는 제의에 그러마 하시며 슬그머니 챙겨두신 것이다. 술을 즐기는 아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아버님과 나누어 마신 헤네시 몇 잔이 그렇게 맛있고 찡할 수가 없다. 회를 먹는데 양주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아니던가! 옆에서 식사를 하던 막내 여동생이 우리 선생님(대학의 은사)도 가끔 술통에 양주를 담아 오시어서 한잔씩 드신다고 했다.

 

아버님 생신에 무엇을 선물할까 생각하던 중 동생 은사님께서 갖고 계시다는 술통이 떠올랐다. 외국을 들락거리며 사온 양주가 몇 병있으니 술통과 술잔을 사드리면 좋을 거란 생각에서다.

 

젊을 때부터 술을 좋아하신 아버님은 애주가 중 애주가시다. 한창때는 하루 저녁에 소주를 일곱 병이나 드실 정도였다. 아무래도 술을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인가 보다. 요즈음은 건강 때문에 많이 자제하시지만 즐기는 건 여전하시다. 산 타기를 좋아하시며, 술 즐겨하시는 어른께 멋진 술통과 술잔을 선물한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가게에 나가니 종류가 여럿이다. 가격대도 2만원 대에서 10만원 대까지. 대만에서 만들었다는 3만원대의 물건보다 6만원대 영국제가 더 값져 보인다. 진열대에 있는 노란색 가죽이 눈에 띄어 저건 얼마냐고 물었더니 독일에서 만든 물건인데 1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적힌 가격을 보니 16만 2천원이다. 가격이 비싸긴 하나 물건은 좋다. 독일제 사 제품인 인데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알아주는) 제품이란다.

 

아버님께 선물을 하는데 기왕이면 제일 좋은 것으로 사드리고 싶다. 평소에  아끼시느라 비싼 물건은 써보질 못하셨는데당신께서 돈을 내고 사라 하면 비싸다고 만지지도 않을 어른이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자식교육 다 시키셨고 그 동안 철저하게 근검절약을 실천 하셨으니 쓰실 만도 하지 않는가. 정작 드리면 비싼 물건 샀다고 나무라시겠지만 자식입장에서는 좋은 물건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술통에 걸 맞는 술잔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 또한 3만원과 10만원 대 두 종류의 물건을 내놓는다. 독일회사에서 만든 제품은 12만원의 가격이 붙어 있다. 큰 차이는 없으나 비싼 쪽이 더 귀엽고 예쁘다. 잔을 넣어두는 가죽의 바느질 솜씨도 촘촘하다. 부담은 되지만 같은 회사 제품으로 결정했다.

 

 기뻐하실 아버님을 생각하니 은근히 가슴이 설렌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 어른께서 오랜 만에 좋은 물건을 가지시고 기뻐 하실 생각을 하니 내가 더 기쁘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부터 여름엔 외제 선글래스에다 겨울엔 가죽 잠버, 가죽장갑, 최신식 라디오까지 악세서리에 무척 마음을 쓰셨다. 멋쟁이 아버님께서 멋진 술통과 술잔을 갖고 계시면 언제나 마음이 뿌듯하시리라. 

 

선물로 드린 양주를 술통에 담아 경로당 어른들과 나누어 드시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아버님께 작은 것을 해 드리는 자식 마음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2004/7/16이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