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커피 한잔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7. 20. 11:15
 <커피 한잔에도 인생이 있다>

 

         며칠 전부터 좋은 향의 신선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내가 커피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커피 맛을 알기 전까지는 국내의 유명 커피메이커인 동서식품이나 맥스웰 하우스 커피에 프리마와 설탕을 넣은 한국식(?) 커피였다. 오래된 다방에서는 파는 커피 말이다. 대부분의 자동판매기에서도 이 커피를 판매한다. 요즈음은 다양한 외국 커피점이 국내에 들어와 성업 중 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방커피라고 하면 이런 한국식 커피를 말하였다. 다방에서는 레지라고 하는 여자들이 커피를 주문 받아 날라 주었고, 나이든 사람들이 가는 어두컴컴한 지하다방에서는 레지가 손님 옆에 죽치고 앉아 저도 한잔 마실까요?라고 하며 매상을 올렸다. 사무실에서도 한국식 다방커피를 주로 마셨다.

 

작은 회사에 방문을 하면 커피를 대접받곤 하였다. 1984년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컴퓨터 계통의 영업을 하다 보니 국내 굴지의 회사들을 방문할 기회가 잦았다. 가는 곳 마다 커피를 주어 하루에 1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의 참 맛은 모르고 단맛만 즐긴 것이다 다름 없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에  두 분의 은사님을 빼놓을 수 없다. 한 분은 고등학교 다닐 때 서대교선생님의 영향이다. 카페인이 들었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마시지 못하던 때였는데(대학에 들어가야 다방출입이 가능했으며, 다방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수업시간에 들어오신 서 선생님은 "오늘 벌써 커피가 몇잔 째 인지 모른다"시며 하루에도 커피를 10잔 이상 드신다고 했다. 그때는 뭐가 그리 맛있길래 쓰디 쓴 커피를 하루에 10잔씩이나 드실까 싶었다.

 

          또 한 분의 은사님은 강신돈 교수이시다. 대학 재학시절 강 교수님은 나의 영웅이셨다. 중학생 때 신문을 팔아 학비를 벌 정도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시고 한국은행을 거쳐 대학으로 오신 강 교수님. 교수님의 거시경제학 강의는 명쾌함 그 자체였다. 경제의 순환과 흐름을 그래프로 하나로 요약하여 설명하시데 열정적인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넋을 잃을 정도였다. 이 강의는 경상대학 전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

 

   교수님은 손수 커피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오셨다. 그렇지 않을 때는 학생들이 자판기 커피라도 뽑아 탁자에 놓아 드리곤 했다. 나도 가끔 커피를 뽑아드렸다. 강의을 하다 목이 마르면 중간중간 커피를 드셨다. 강의 도중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여 남겨진  경우에도 버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 식은 텁텁한 커피일지라도 반드시 마시고 강의실을 뜨셨다. 은사님께서 커피를 즐겨 드시니 나도 덩달아 마셨다. 그렇게 하면 유식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습관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커피의 맛을 제대로 알고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뉴욕주 롱아일런드의 한 사립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컴퓨터 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 매일 아침 코네티컷 강이 흐르는 멋진 풍경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샀다. 커다란 사이즈의 컵에 가득 담은 커피. 이 커피의 신선한 향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리포트를 쓸 때나 공부를 할 때도 커피 잔은 늘 옆에 있었다. 커피가 있어야만 리포트가 쓰여지고 기억력도 좋아졌다.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었다. 커피가 없으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옆에 커피가 있어야 했고, 강의를 듣는 중에도 커피가 없으면 허전했다. 조금씩 이라도 마셔야만 머리가 맑아졌다.     

 

토론토에 계신 선배 분께서 '베이커즈 다즌'(Baker's Dozen)이라는 커피점(도너츠와 커피를 파는 체인점)을 하셨는데 방학이나 주말에 토론토로 나오면 늘 시간을 내어 선배네 가게를 들렀다. 선배께서 직접 내려주는 신선한 커피는 늘 맛이 그만이었다. 그란데(grande) 사이즈의 컵에 가득 든 커피를 앉은 자리에서 세잔씩 마시기도 했다.

        

             자동차로 뉴욕 롱아일런드에서 맨하탄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3시간. 장거리 운전에 신선한 커피한잔 역시 필수적인 것이었다. 운전중 마시는 '던킨'의 신선한 커피는 일종의 졸림 방지제였다. 과장해서 말하면 생명을 지켜주는 은인(?)과도 같았다. 이 시절 커피맛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도 한다. 귀엽고 앙증맞은 잔에 담겨진 한잔의 진한 커피를 한모금 삼키면 알싸한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정신이 번쩍 든다. 물론 쓰기도 하지만...글을 쓰면서도 커피를 한모금씩 마시면 글도 잘된다. 촉매작용을 하는 것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엔 괜시리 커피가 마시고 싶다. 장마철이라 요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렸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려면 한참 걸어가 커피를 사와야 한다. 쏟아지는 비에 바지를 다 적실 것 같아 근 삼일 동안 마셔야겠다고 벼르기만 했다.  오늘에야 드디어 커피점에 들었다. 금방내린 신선한 커피를 한모금 삼키니 갑자기 몸이 깨어나고 정신이 살아 움직인다. 맛있는 커피 한잔에도 인생이 있다.

     

             <2004/7/19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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