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음악이 있어 풍성한 밤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7. 23. 13:14

 <음악이 있어 풍성한 밤>

 

  무척이나 더운 여름이다. 장마가 지나자 마자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습기가 많은데 기온까지 높으니 찜통이나 다름없다. 밤에도 25도가 넘은 열대야가 벌써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젯밤 잘 주무셨냐?고 하는 것이 인사이다. 일찍 들어가 집에서 더위와 씨름 하는 것보다 좋은 연주라도 듣는 게 낫겠다 싶다.

 

  여의도 KBS홀에서 있은 KBS교향악단의 566회 연주회(2004년 7월 22일) 에 갔다. 티켓 값이 비싸지 않아 부담도 되지 않는다. 제일 비싼 S석 표가 3만원. 하지만 8천원 하는 표도 있다. 가까이서 듣는 것도 좋지만 오케스트라 연주야 멀리서도 잘 들리니 싼 표를 사도 큰 문제가 없다. 인테넷을 통하여 부담 없는 가격에 표를 샀다. 혼자서 듣는 음악이니 구태여 체면 같은 걸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

 

   미국의 링컨센터나 유럽 각 도시의 연주회장을 가보면 저녁에 이브닝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중년신사 숙녀들이 연주회를 기다리느라 줄을 선다. 연주회가 시작되면 빈자리가 없다. 표가 비싸 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즐긴다. 클래식음악의 경우 보통 사람들이 연주장을 찾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링컨센터에서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가고 싶었다. 표 값이 비싸 몇 번을 망설이다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선 적이 여러 번 있다. 유학생 신분으로 비싼 돈을 내고 공연장에 선뜻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클래식 음악회의 입장권이 많이 싼 편이다. 지방의 경우는 더욱 더하고. 최근에 값이 올랐다고는 하나 잘 고르기만 하면 좋은 연주회의 입장권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가 있다.

 

   연주회장을 찾아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90년대 초 암스테르담에 출장을 갔다. 일주일 동안의 짧은 출장 일정 중 잠시 시간을 내어 암스테르담 콘체르트 헤보우의 연주장을 찾았다. 떠오르는 신예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빡빡한 회의 일정과 시차로 인하여 몹시 피곤한 몸이었지만 모처럼 듣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에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다. 관 파트의 뛰어난 연주와 장미꽃으로 장식한 무대장치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완벽한 음향과 화려한 무대, 객석을 겸비한 공연장의 출중함 말할 것도 없고.(어릴 때 살던 집에 암스테르담 콘체르트 헤보우의 연주장과 연주 뒤 인사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이 담긴 커다란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이 때의 연주 기억을 잊지 못하는 나는 음악회를 갈 때 마다 그때의 감동을 되새기곤 한다.    

  

           KBS향의 연주 실력은 짱짱하다. NHK방송교향악단 만큼의 수준에 이르진 못했다 할지라도(지금은 NHK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연주를 들어보면 단원들의 기량이 예전에 비해 몰라보게 달라졌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능한 연주가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즈음은 줄리아드 등 세계적인 학교에서 막 유학을 하고 돌아온 젊은 연주자들이 차고 넘친다. 워낙 실력있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지방교향악단 단원자리도 차고 들어가기가 힘든다. 악단 수는 정해져 있고 한번 입단한 단원들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리 차지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한다.

    

           KBS교향악단이야 한국을 대표하는 악단이니 국내에서 공부했건 해외에서 공부했건 최고로 실력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연주 실력이 뛰어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뿐만 아니라 요즈음 우리 악단에도 외국인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는 게 낯설지 않다.

 

서울시향 음악감독, 부산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곽승의 지휘로 연주된 어제의 프로그램은 프랑스 작곡가 토마(Ambroise Thomas, 1811-1896 )의 오페라 레몽서곡,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2번,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었다.

 

레몽 서곡의 연주에서는 KBS향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지며 , 이제 정말 KBS 향을 세계 어느 곳에 내어 놓아도 견줄만한 좋은 연주단체가 되었다 싶을 만큼 조화다운 연주였다. 특히 현파트의 통일되고 세련된 음색은 피아니씨모(아주 여리게) 연주에서 더욱 빛났다. 빠르고 느린 템포의 완벽한 조절은 곡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가볍고 친근감 넘치는 서곡은 이날  연주가 매끄러우리라는 예상을 하게 했다.

 

이어진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은 협연자 송영훈의 능력이 돋보였다. 줄리어드를 졸업하고 세종솔로이스츠, 금호사중주단의 단원이기도 한 송영훈의 연주는 섬광처럼 빛났다. 긴장한 탓인지 시작은 다소 평범하였지만 연주를 더할수록 진주의 모습을 드러냈다 몸과 첼로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템포로 피아노(여리게)와 포르테'(세게)를 넘나들었다. 특히 현을 손으로 뜯는 연주는 일품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은 1966년에 완성되어 작곡자의 60세 생일에 초연된 비교적 최근의 곡이다. 현대적인 색체가 느껴지며 전 악장을 통하여 우울하고 침울한 비극적 정서가 깔려 있다. 대화형식 또는 이중주 형태로 진행되는 독주 악기와 반주부분의 조화가 이채롭다. 어려운 곡을 깔끔하게 표현한 협연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중간휴식 후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 브람스의 모든 곡에는 장엄함이 느껴지는데 이 곡 역시 다소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장엄함이 있는 곡이다. 1악장 도입부분을 포르테로 하였는데 조금 여리게 시작하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1악장에서 제1주제와 제2주제가 관객석에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필자가 앉은 좌석이 무대와 더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런건 아닌지 모르겠다. 4악장에 가서야 곡의 주제를 뚜렷이 들을 수 있었다. 곡 중간 악장 김복수의 곡 중 솔로(독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훌륭했다. 4악장에서의 익숙한 주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친근감을 주었으며 장마기간 동안의 지루한 비와 먹구름이 한꺼번에 걷히는 듯한 속 시원함이 있었다.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인 휘날레는 한 여름 밤의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 보냈다.

 

음악을 사랑하는 귀가 있어 삶의 기쁨이 더하다. 평생동안 좋은 음악과 생을 즐기리라. 음악이 있어 풍성한 밤!

<2004/7/23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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