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ermination·청년

청춘은 영원한 것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7. 27. 10:01
       동네에 막걸리 집이 문을 열었다. 가게가 즐비한  한길 가에 새로 생긴 막걸리 집은 어색하리만치 허름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창구이로 제법 장사가 되던 집인데 무슨 일인지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다. 비워 두었던 가게가 갑자기 허접한 막걸리 집으로 변한 것이다. 가게 양 옆으로는 비디오대여점이 있고 제법 서구적으로 꾸며놓은 맥주집과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횟집이 있다.

 

5평 남짓한 좁은 실내는 주방과 테이블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지도 않다. 주방에 놓인 화로에서 생선을 구우면 생선 굽는 냄새가 실내에 가득하고, 빈대떡을 구우면 테이블에 앉은 손님 역시 빈대떡 굽는 냄새를 맞아야 하는 그런 곳이다. 50대 중반의 막걸리 집 주인은 옛 주막집 여인네 같다. 악의라고는 없어 보이는  얼굴에 푼수끼 마저 엿보인다. 맥없이 좋아 보이는 선함이 얼굴에 배여있다. 연민의 정도 느껴진다. 주막집 여주인으론 '딱'이다. 막걸리 큰 사발에 천원, 빈대떡 한판에 이천원, 파전 하나에 오천원 등 가격도 부담이 없다. 퇴근 길에 가끔들러 막걸리 한사발 하고 들어가면 좋을 성싶다. 

 

        목이나 축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게 안에 들어서니 생선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삼복 더위의 화끈한 열기가 실내에 가득하다. 에어컨을 켜 두었다고는 하나 바깥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시원함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에어컨의 용량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텁텁한 막걸리 보다 시원한 맥주가 나을 것 같아 맥주 한 병에다 빈대떡 두 장을 주문했다.

 

좁은 가게 안에 두 그룹의 손님이 자리잡고 있다. 술이 오른 탓인지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말소리가 요란뻑적찌근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70대 중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나누시는 이야기로 보아 할아버지는 동네 노인정에서 회장을 맞고 계신 분이고 할머니는 부회장쯤 되는 듯 싶다. 둘러둘러 말씀들을 하시지만 옆에서 듣는 나로서는 회장님 할아버지를 한 분을 두고 두 분의 할머니가 사랑싸움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 60대 후반 7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벌이는 사랑싸움을 젊은이가 보고 있자니 민망한 생각도 들고, 재미있기도 하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는 것은 젊으나 늙으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만 표현하지 않으실 뿐이지.

 

 올해 71세인 어머님은 고운 피부에다 주름이 없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신다. 며칠 전 어머님께서 예쁜 옷 몇 벌을 사셨다. 평소에도 젊어 보이시는데 화려한 옷을 입으니 50대 중반이나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신다. 원피스, 정장스타일, 블라우스와 바지 등 새로 산 옷을 입고 패션 쇼를 하듯 거실을 몇 바퀴 도셨다. 옷이 맵시도 있으려니와 세련되기도 했다. 어머님께서도 만족하시는 눈치이시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이 젊은 시절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버님(74세)의 말씀 한마디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당신 그렇게 입으니 몰라 보겠어. 남자들이 연애하자고 달려 들면 어떻게 하지? 내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보카치오라는 예쁜 찻집에 차를 마시러 갔다. 테라스를 잘 꾸며 놓았고 실내 조명과 장식이 차분하고 의자도 편안한 그런 집이다. 앙증맞게 달려있는 커튼도 맵시가 있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푸르름이 있어 좋다.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나이든 노 부부께서 커피를 드시러 오셨다. 조금 전 식당에서도 두 분의 모습을 뵈었다. 더운 여름에 육수 맛이 구수한(시원한) 냉면집을 찾아 오신 것이다. 손을 꼭 붙잡고 외식하러 나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식사 후 분위기 있는 찻집에 앉아 오붓이 차 한잔 드시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요즈음 세상에 흔치 않는 일이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청춘은 영원한 것!

        <2004/7/27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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