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농가를 살리고자 농촌진흥청이 초복 날을 복숭아 먹는 날로 정하고 계몽에 나섰다. 저 칼로리에 섬유질이 풍부하여 소화가 잘 되고 장이 맑아지며 피부미용과 니코틴 해독에 좋다고 과학적 근거를 늘어놓긴 했지만 그런 계몽 이전에 조상들은 복중에 복숭아를 많이 먹었음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복숭아를 먹어야 할 과학적 이유 이전에 조상들로 하여금 찾아 먹게 한 주술적 이유가 보다 설득력이 있다. 시어머니가 앙숙인 며느리를, 또는 며느리가 앙숙인 시누이를 음해할 때 ‘복중에 복숭아 숨어 따먹다 들킨 계집’이라고 했다.
복숭아 많이 먹으면 속살이 찐다는 속담도 있듯이 복숭아는 그 생김새가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하여 속살 곧 음력(陰力)을 왕성하게 하는 과일로 알았다. 그래서 옛 부녀자들 은밀히 복숭아를 많이 들 먹었던 것이다. 성감이나 성력이 약하다 할 때 복숭아 나무 진을 내어 꿀에 타 먹는다든가 복숭아 나무 몽둥이를 사타구니에 끼고 밤을 새운다든가 복숭아 나뭇가지 삶은 물로 뒷물을 하면 냉병이 낫는 것으로 알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쥐(子)날마다 복숭아씨 한 알씩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도 복숭아와 여자 성기의 유감주술(類感呪術)에서 비롯된 관행이다.
어릴 적 소꿉질에서 모자(母子) 간을 설정할 때 어머니 될 아이의 가랑이 밑을 빠져 나오는 의식을 거치는데 이때 아이에게 복숭아 나뭇가지를 입에 물리게 마련이다. 단명을 예언 받으면 무당을 수양모로 삼는데 이 약정예식을 도지재생지례(桃枝再生之?)라 했음도 복숭아가 생명을 상징했음을 말해준다. 복숭아씨를 모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드려 수시로 들게 하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으로 가르쳤던 것도 복숭아의 생명력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의 수연(壽筵)이나 생일날은 말할 것 없고 복중 여느 날에도 부모에게 올리는 과일로 복숭아는 빠트리지 않은 것이 자식된 도리였다.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西王母)는 3000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000년 만에 열매가 열리는 불로장수 나무를 곁에 기르는데 바로 그 나무가 천도복숭아다. 복숭아 먹는 전통은 이처럼 유구하고 확고 했던지라 때 아닌 부활이 그래서 무상하다.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따온 글, 2004/7/22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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