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아버님께 드리는 글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8. 3. 10:01
 <아버님께 드리는 글>

 

아버님, 이른 아침 연주대에 올랐습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한 권의 책과 땀 흘린 후 갈아입을 옷을 주섬주섬 베낭에 챙겨넣은 후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늘 관악산을 다니면서도 5513번 버스는 처음 타보았습니다. 7월 1일 버스 노선이 바뀌어 차량의 번호는 물론 다니는 길까지 바뀌었거든요. 버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좀 당황했습니다. 평소에 다니지 않는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시간만 낭비한다 싶어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보다 15분-20분 정도 더 걸리는 정도였기에 안도하였습니다. 시간이 더 걸리긴 했으나 안가 본 미지의 길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차가 서울대학교 교내로 들어가 관악산 중턱에 위치한 공학관 앞에 내려주었습니다. 서울대 공학관 쪽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연주대까지는 불과 30-40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제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아버님께 배운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늘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셨지요. 과수원을 경영하신 당신께서 해뜨기 전 선선할 때 일하신 습관이 있으셔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많던 청소년 시절 늦잠을 잘라 치면 밖에서 큰 기침으로 기척을 하셨지요.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듯 말입니다. 지금도 새벽 네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시어 산에 오르시는 아버님께 저는 억만금을(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부지런함을 배웠습니다. 저도 이날 다섯시에 일어났습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산을 오르는 즐거움은 정상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희열입니다. 이 희열은 산에 오르는 기쁨의 극치이지요. 하지만 오르는 중간중간 보고 느끼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그에 못하지 않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힘이 들기도 하지만 힘듬 가운데서도 큰 만족을 얻습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산 만이 제공해주는 기쁨과 만족이지요. 산에서 나의 모습은 어느새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흐르는 계곡물이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온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여 자연과 내가 합일(合一)하는 것입니다.

 

소자(小子)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상화선배로부터 산을 배웠습니다. 딱히 선배가 제게 산을 가르쳐 주었다기보다는 바르고, 참을 성이 많은, 언제나 변함없는 산의 모습을 닮은 선배를 먼발치에서 나마 바라봄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선배와의 만남 이후 주말이면 늘 가까운 산을 다녔습니다. 멀리는 소백산, 지리산으로부터 가까이는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 소요산, 청계산까지 비교적 많은 산을 올랐습니다. 멀리 있는 산보다 가까이 있는 산이 더 의미 있는 산이다(멀리 있는 산은 자주 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라는 생각에 수락산을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바뀌는 산은 언제나 경이로움으로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산을 알고, 산을 좋아하게 된 건 아버님께서 산에 다니신 이후 입니다. 아버님께서 새벽마다 산에 다니시니 저 또한 산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매일같이 이른 새벽 산을 오르신다는 생각을 하면 저 역시 저절로 산을 향해 발길이 옮겨집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저는 아버님과 함께 오르는 팔공산을 생각하곤 합니다. 젊은 소자보다 더 기운차게 내달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대하면서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 기쁨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곤 합니다. 아버님께로부터 배우고, 물려받는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평생을 통하여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대학교 다니던 때 친구들이 팔공산을 다녀왔다고 하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산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몰랐던 게지요. 만약에 제가 죽을 때까지 산을 몰랐더라면, 아버님과 오르는 팔공산의 기쁨을 알지 못하였더라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삶의 기쁨 중 하나를 누리지 못하는 반쪽 인생이 되었겠지요.  늦게 나마 산의 기쁨을 맛보고 또 부자지간 산을 매개로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축복입니다. (어쩌면 제가 산을 사랑하는 것은 부지런한 아버님의 모습을 배우고자 함이요, 아버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현이겠지요. 아버님에 대한 저의 사랑은 늘 부지런함과 산을 좋아하는 것으로도 평생 표현될 것입니다)

 

이날 7시에 연주대에서 절밥을 먹었습니다. 배식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평소에 알고 지내시는 어르신이 서 계셨습니다.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직장동료의 부친이신데 아버님과 동년배십니다. 연로 하심에도 은퇴를 않으시고 독일계회사의 관리인으로 일하시는 분이랍니다.(회사에서 계속 일해달라고 종용하여 힘든 일도 아니고 하여 계속하신 답니다) 6.25동란 때 장교로 참전하셨다는 말씀을 들은 일이 있어 어르신을 대할 때마다 아버님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니 어르신께서도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산에 올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자네는 자주 만나지 못했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이 맞질 않아 그런가 봅니다라고 공손히 대답해 드렸습니다. 이북에서 월남한 분들께서 대부분 그러하듯 이 어르신 역시 생활력이 강하시고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든 어른을 내 부모 모시듯 공경하고 또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인사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말씀 하셨던 아버님의 훈계를 언제나 잊지 않고 실천하려 애씁니다. 그게 습관이 되어 한국에서는 물론 캐나다에서도 어르신을 대하면 꼭 내 부모 모시듯 합니다. 어른 말씀은 들어 손해 날게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나 봅니다. 

 

하산은 과천쪽 길을 택하였습니다. 연주대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너무나 인공적이고 사람 또한 많습니다. 산은 사람이 없을 때가 더 산다운데 말입니다. 사람이 많고 인공적인 모습에 안타까와 할 즈음 물소리가 가장 잘 들린다는 계곡에 섰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정말 물흐르는 소리가 여느 음악 만큼이나 아름답게 들립니다. 멀지 않은 위치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엔 사람이 적은 다른 길을 택하여 내려 오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늘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2004/8/1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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