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8. 10. 09:42
 <나의 살던 고향은>

 

어릴 적 우리는 과수원 한 가운데 위치한 집에서 살았다. 어릴 적이라 그런지 대문에서부터 집 안까지 걸어 들어오는데 한참이 걸린 것 같다. 길 양 옆엔 사과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심겨져 있었다. 나중에 커서 보니 대문에서 집까지는 그다지 길지 않은 거리였는데 어릴 때는 그 거리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집 안쪽에는 흑으로 토담을 쌓고 초가로 지붕을 엮었다. 부엌과 방 두 칸이 딸린 일자형의 집이었다. 이 집 옆에는 창고가 있었는데 아래로 땅을 조금 파서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서늘하게 저장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창고 안은 창이 없어 어둡고 서늘했는데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무섭고 으시시한 느낌이 들었다. 창고 안에는 공사 일에 쓰는 농기구를 저장하였고 연료로 쓰는 휘발유나 경유를 담은 드럼통이 보관 되어있었다. 가을에 사과를 수확하면 사과가 다 팔려나갈 때까지 겨우내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사과가 보관되어 있을 때 은은한 사과냄새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창고 옆쪽으로 방이 하나 있었는데 이 방에는 1960년대에는 귀한 물건이었던 침대라든가 전축 피아노 철제 장롱 등이 놓여있었다. 대구의 작은 외삼촌 집에서 태어나 갓난아기때  외가가 있는 현풍에서 1년 정도 자란 뒤 성장할 때까지 19년 간을 이 집에서 자랐다. 물론 동생 미경 철희 미정도 모두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창고 방에 있던 피아노는 아버님께서 극진히 사랑하셨던 세살 터울의 여동생 미경을 위해 사주신 것이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생을 위해 사주셨다. 이 시절 피아노를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원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있는 임정근씨가 이곳에 와서 피아노를 치며 놀기도 했다)

 

집 앞에는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마당은 그 모습을 달리했다. 여름이면 마당에 평상을 놓고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했다. 평상에서 먹던 음식 중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된장국이다. 어머님께서 풋고추를 넣고 만드신 시원한 된장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48세인 지금도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된장을 먹으면서 그때 평상 위에서 먹던 된장을 생각하곤 한다. 눈 쌓인 겨울엔 소쿠리에 끈을 길게 매달아 참새를 잡아보겠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한 적도 있다.

 

마당 끝 즈음에는 물을 길어올리는 펌프가 있었다. 여름이면 펌프에서 길어올린 차가운 물에 밥을 몇 번 담갔다 먹으면 아주 시원했다(어릴적 어른 들은 이를 두고 밥을 시말아 먹는다고 표현하셨다) 시원한 밥에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맛있게 먹곤 했다. 당시에  우물 오른 쪽 옆으로는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봄에는 감 꽃이 예쁘게 피었고 뭐 특별하게 가꾸지 않아도 가을이면 커다란 감이 열리곤 하였다.

 

수도 왼쪽 옆으로는 등나무로 이어진 멋진 그늘이 있었는데 등나무 쪽에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가 한 두 송이 열리곤 하였다. 병이 들었는지 오래지 않아 포도나무는 없어져 버렸다.

 

마당 앞쪽에는 화단을 가꾸었다. 제법 크게 자리잡은 화단에는 난초도 있었고 장미도 있었다. 사루비아도 심었고 맨드라미도 심었다. 화단 옆에는 무궁화 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는데 무궁화 꽃이 떨어질 때면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나는 지금도 그 화단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때 기억 속에 있던 그 화단을 다시 가꾸고 싶은 욕심이 든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마당 한쪽에 평상을 놓고 사과궤짝을 쌓은 후 맨 위에는 베니다 판을 놓고 만든 탁구대 이다. 베니다 판 가운데 네트를 설치하고 탁구를 치곤 하였는데 운동신경이 뛰어나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탁구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 덕분에 나나 동생들 두 명은 일찍 탁구를 배웠다. 제법 많은 나이차이로 인하여 그 시절 함께 자라지 못한 막내 미정이는 늦었지만 요즈음 탁구를 배우는데 열심이다. 이때는 운동시설이 많지 않은 시절이라 급조 해 만든 이 탁구대가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 사촌형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가끔 탁구시합이 벌어지곤 하였다.

 

탁구 외에 배트민턴도 했었는데 마당에 금을 긋고 노끈을 연결한 네트를 중심으로 단식베트민턴 시합이 열리곤 하였다.

 

다시 집 이야기로 돌아간다. 토담으로 된 집은 처음에는 지붕이 초가로 되어있었는데 이. 초가지붕은 2-3년에 한번씩 바꾸었다. 볏단을 역어 만든 초가지붕은 지붕을 입힌 후 몇 년이 지나면 거무스레한 빛을 발하면서 썩기 때문에 헌 지붕을 벗겨 내고 새 지붕을 얹는 일을 주기적으로 해야 했다. 추수하고 남은 볏단으로 역은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었다. 여러명의 인부들을 동원하여 함께 일을 하였는데 지붕을 올리는 날은 마치 잔칫집같이 어수선하였다.

 

      겨울 밤이면 군용후레시(군청색으로 기억자로 꺾어진 후레시, 미 군용으로 겨울이면 어둠을 비춰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를 들고 지붕을 비춰 지붕틈새로 기어들어간 참새를 잡았다. 아버님은 이렇게 참새를 잡아 털을 뽑고 물에 씻어 부엌아궁이에 넣고 참새구이를 했다. 손톱만한 크기의 구운 참새구이 고기를 입에 넣으면 고소한 맛이 닭고기 맛 같기도 하고 쇠고기 맛 같기도 했다.

 

그 시절엔 참새구이, 메뚜기 구이, 산비둘기가 간식거리가 되었다. 산비둘기를 한마리 잡으면 동네 아저씨들이 함께 모여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였다.

 

      이번 주말(8월 7일) 부모님과 동생 미경과 미정이 다섯 사람이 시골집(옛날 살던 집 말고 1979년 새로 지은 양옥집)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여름휴가를 겸해서 읽고 싶은 책 10권을 옆에 두고 읽어가면서, 옛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니 감회가 새롭다.

 

     기회 있을 때 마다 어릴 적의 추억이 어린 고향의 이야기를 정리해 둘 작정이다.

      <2004/8/10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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