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일요일 오후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9. 1. 30. 00:06

일요일 오후 외출에서 돌아와 차를 세우는데 옆집 친구 폴이 인사를 합니다. 영하 십도의 추운 날씨임에도 햇살이 드는 차고 앞에 차를 세우고 엔진 오일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비소에 가지고 가면 오일만 바꾸는 데 제법 많은 돈을 달라고 하니 간단한 일은 스스로 합니다. 영하 십도가 넘는 추운 겨울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친구의 성실함에 놀라게 됩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날씨가 추우니 속을 좀 데우자며 집으로 들어가더니 아직 열지도 않은 위스키 한 병과 얼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겨울날 옷을 두껍게 껴입고 가죽 장갑을 끼고 차고에 서서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행복에 빠집니다. 위스키와 얼음을 넣고 진저 엘리라는 음료수를 썩어 건배를 합니다. 함께 마시는 위스키는 평범한 한 잔의 알콜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정이자 다리입니다.

폴은 부지런합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마음껏 쉬는 모습이 우리들 정서에 잘 맞습니다. 렌트카(car rental business)사업을 하다가 미국의 911 사태이후 보험료가 오르자 사업을 정리하고 지금은 컨트랙터(contractor)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폴의 손을 거치면 안 되는 것이 없는 핸디맨(handy-man)입니다.

며칠 전 폴은 멕시코의 한 휴양지로 한 주일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멕시코로 가서 푹 쉬다가 오고 싶은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멕시코 여행은 아내를 위한 작은 선물이라 하였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간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온 병석 후배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배는 멕시코로의 여행이 참으로 안락하고 꼭 필요한 휴식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특급호텔에서 프랑스 요리, 이태리 요리 등 각 나라의 최고급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여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저녁을 두끼나 먹었다고 합니다. 와인이나 위스키 등 음료도 무제한 제공하였는데 평생에 그런 쉼은 처음 가져보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건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quality time)이었다지요. 아내와 딸(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세 사람이 긴 대화의 시간을 가져본 것도 처음이었답니다. 대화를 나누며 가족간 강한 유대를 느낀 것 역시 못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아내와도, 딸아이와도 가끔 다투고 자주 갈등을 겪곤 했었는데 여행을 다녀와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며 기뻐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게되니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를 감동시켰던 이야기는 그 다음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는 일을 하면서 짜증을 내고 일하는 기쁨이 덜하였는데 멕시코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하는 일이 재미있을 뿐더러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름휴가도 쓰지 않고 겨울에 캐러비안으로 크루즈 여행이나 가족여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에 돈이 들고, 시간이 필요하니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벌고 또 휴식에 필요한 시간을 축적하겠다는 이야기였지요. 이래서 휴식이 필요한 것 이구나라는 생각도 하였다지요.

아쉽지만 폴에게 금년 2월에 있을 여행엔 함께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막 대학 일 학년이 된 둘째 아이의 픽업(집에서 기차역까지 차를 태워주는 일)이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오늘 오후 폴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열심히 일을 한 뒤 가지는 휴식이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일과 휴식을 배분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더 잘 할 수 있고, 삶을 더욱 건강하게 살 수 있겠지요.

병석 후배나 옆집 친구 폴은 건강한 삶을 사는 훌륭한 이웃이라는 생각이 듭니니다. 매섭게 추운 날이지만 환하게 내려 쬐이는 햇살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일요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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