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아침
이택희
눈이 내린다. 하루 종일 내릴 것이라 한다. 영 거리와 카빌 사거리에 위치한 소담스런 찻집. 차 한 잔 앞에 두고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평화롭고 편안하다.
영하 십오 도나 되는 추운 날이지만 가게 안에는 따뜻한 실내의 편안함을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눈이 작은 동양사람, 코가 우뚝한 유럽사람,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 잠바차림으로 일을 나가기 전 커피한잔에다 머핀으로 아침을 먹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을 상상해 본다.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며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며 살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여행을 떠나고 이웃을 돕는 일로 기쁨을 누리며 살지 않을까.
피부색이 다르고 생긴 모습은 전혀 딴판이어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등교 전 찻집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이는 중국인 아버지 모습이 보기에 좋다. 열 서너 살로 보이는 두 딸의 아빠. 어쩌면 일터가 근처에 있고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하니 집에서 아침 먹기가 곤란한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빠는 중국어로 말하고 아이들은 영어로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지만 어색한 기색이라고는 없다. 자매가 서로 키득거리기도 하고 아빠에게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엔 사랑으로 가득하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막힘이 없다.
사각사각 나무 위로 내려앉는 눈. 앙상한 가지로 팔을 벌린 채 외롭게 서있는 나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말도 없이 추위에 떨고 서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그널을 보낸다. 너무 바쁜 삶을 살지만 말고 가만히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 한다.
눈 내리는 거리를 한 폭의 그림처럼 만들어 주는 나무, 제 한 몸 희생하여 보는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다.
나무와 같은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있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유익을 주는 사람, 요란하지 않으나 바라만보아도 힘이 되는 나무같은 사람이고 싶다.
십년 후 이십년 후 첫 눈이 내리면 다시 만나자고 했었던 소녀와의 약속이 떠오르고, 마당 한 구석 쌓인 눈을 쓸어내고 소쿠리를 뒤집어 참새 유혹하던 어린 시절 생각도 난다. 아득한 옛 추억이 속삭이듯 말을 걸어온다.
눈 내리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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