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어버이를 그리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2. 10. 4. 00:39

 

오랜만에 영과 16th에 왔습니다. 시월 들어 둘째 날 가을의 초입입니다. 추석도 지났고 다음 주일이면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입니다미국보다 약 4주가량 빠르지요. 갈대와 억새가 춤을 추고 단풍은 울긋불긋 자태를 뽐냅니다. 계절이 바뀌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저렇듯 붉은색, 노란색 옷을 입었습니다.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려나 봅니다.

이곳저곳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합니다. 단풍 구경을 하러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한국의 단풍도 여기에 못지않지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은행나뭇잎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충무로 근처 길가에 은행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올망졸망 달려있던 은행알이 굵어지고 노랗게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계신 시골에서도 은행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반겨주곤 했습니다.

지난해 추석을 막 지나고 아버님께서 세상을 뜨셨지요. 홀로 계신 어머님은 일 년 내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합니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못다 나눈 사랑이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떠나고 나서야 귀함을 알게 되는 건 누구나 같은가 봅니다.

추석을 지나면서 동년배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고향을 떠나 이국만리 타향에 와서 정착하여 사는 이들입니다. 그나마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어 위로를 받습니다.

일 년 반 전 고향에 갔을 때 형님과 다툰 이후 형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울먹이는 분이 있는가 하면 노인병원에 계신 연로하신(94) 어머님을 염려하는 분도 계십니다. 70대 초반에 암으로 투병 중이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가슴 졸이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84세이신 양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아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마음을 졸입니다.

부모님 마음은 또 어떻습니까. “나는 괜찮으니 너희가 건강해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은 단풍나무요 은행나무입니다. 자녀를 향한 그리움에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가시겠지요. 살아갈 세월이 많지 않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시겠습니까.   

단풍과 은행나무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누군가 보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네 부모님도 자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눈앞에 나타나 주었으면 하고 바라실 게니까요. 겉으로 말씀은 못하시고 속으로 삭이시며 하루에도 수십 번 옷을 갈아입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