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레스토랑 아마야(amaya)
인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중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일관 스님으로부터 인도에 다녀오면 얻는 게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말씀을 들으며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갠지스 강에 몸을 씻는 순례자들이며 인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듯하다. 인도 사람들은 영원한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말해주지 않았나 싶다.
캐나다에 와서 인도인을 더러 만났다. 무엇보다 옆집 친구 폴이 인도 계통이다. 폴의 할아버지는 인도에서 남미 가이아나로 건너가 터전을 잡았다. 가이아나 태생인 폴은 한 번도 인도를 다녀온 적은 없었다. 물론 인도 말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먹는 음식, 듣는 음악, 생활 풍습은 인도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만주로 이주한 우리 조상이나 일본으로 건너간 핏줄이 한민족 고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폴 내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폴의 친척과 친구들이 방문하면 인사를 나누곤 한다.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맛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면 정이 많은 사람들로 보인다. 좋은 일이 있으면 흥겨운 인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곤 한다. 3일간 계속되는 성대한 결혼예식도 인상 깊었는데 우리네 옛 결혼 풍습과 닮은 면이 많은 듯했다.
2년간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인도계통 사람들은 매우 낙천적이었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흘려보낼 줄 알았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로 보였다.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로 현재의 행복을 담보하려 들지 않았다.
본 남성합창단에서 함께 활동하는 지인은 내과 의사 일을 내려놓고 선교사역을 위해 인도로 떠났었다. 현지 적응을 위해 노력하던 중 건강에 적신호가 와 급거 귀국했고 치료 중이다. 섭씨 40도를 쉽게 넘기는 무더운 날씨는 가히 살인적이라 하였다.
삼 년 전쯤이었을까. 열흘간의 여정으로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딸은 운전대를 잡고 총알택시 기사처럼 지그재그로 달렸다. “운전이 난폭해졌다.”고 하니 인도에서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씨~익 웃었다.
친구 내외가 근사한 인도 식당 아마야(www.amayarestaurant.com)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인도 음식을 먹을 예정이라 하여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십여 년 전 부하직원들과 함께 명동에 막 생긴 인도 음식점을 가본 적은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인도 음식점이다.
은은한 불빛 아래 정갈하게 놓인 테이블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손님 몇 분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친구가 미리 적어온 메뉴로 음식을 주문한 후 스텔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바로 음식이 나온다. 인도 전통의 토마토 버터 치킨과 커리를 곁들인 커다란 새우 요리가 일품이다. 밥에 소스를 비벼 먹으니 입안에서 솔솔 녹는다. 인도식으로 구운 빵 난을 소스에 발라 씹는 맛이 고소하다. 금방 구워져 나온 난은 보기에도 좋을 뿐더러 쫄깃쫄깃한 맛이 그만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내외와 격조 있는 식당에서 함께 나누는 저녁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 중 기쁨이다. 색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는 자리가 어찌 즐겁지 않으랴.
메뉴를 기록해 둔다. 1) coastal prawn curry 2) heirloom tomato butter chicken 3) rice 4) naan(빵) 5) saag paneer(시금치랑 cottage cheese들어간 베지테리안, 이것은 주문하지 않았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 ; 일관스님 법문>
봄이 되면 얼어붙은 강물이 녹고 나무 가지에는 파란 새싹이 돋아 날 것이다. 봄은 분명 사람들에게 계절의 섭리를 일깨워 주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희망과 긍정의 의미로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화사한 연두색 봄 색깔이 굳어 있던 얼굴에 웃음이 번지게 하고 닫혀 있던 마음이 열려 활기찬 모습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소득의 양극화로 사람들의 가슴을 짓눌러오고 있다. 순리가 왜곡되고 정의로움이 멈칫거리고는 있지만 밝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어떤 장벽도 넘게 될 것이다. 어느 시대든 세상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해왔지만 사람들은 유익한 쪽으로 삶의 물꼬를 터왔다. 물이 흐르다가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내려가고 큰 물줄기를 만나면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르듯이 지금 우리들은 작은 일에 크게 분노하며 더러운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삶에 주어진 일과 상황들이 조금은 어렵고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신명을 내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희망의 인연은 희망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리석음을 녹이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용광로와 같은 지혜로운 마음을 모두 갖고 있지 않는가.
연초에 서로들 넉넉하게 복을 빌었다. 복이 과연 뭔가. 돈인가. 건강인가. 잘난 지식인가. 편한 친구인가. 기분 좋은 마음인가.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뭉친 것이라면 좋기야 하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항목의 속성이 한결같을 수야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가졌다 하더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줄곧 긴장해야 한다. 긴장과 노력과 정성을 바쳐 돈과 건강과 기분 좋음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인가. 과연 그렇게 불러도 괜찮은 것인가. 한자를 풀어보면 복(福)은 넓게 보는 것이고, 화(禍)는 허물을 보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생명을 받고 사는 동안 넓게 보기 위한 방향으로 부단히 진화해 온 것 같다. 덕분에 우리는 포털의 검색창에 단어 하나만 치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뼈 속까지 깡그리 검색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시공을 자유자재로 뛰어넘는 것도 가능해져 좋은 춤과 노래를 수억 명이 동시에 따라 한다. 그러나 넓게 본다는 건 온 세계의 소식과 지식과 기술을 시시콜콜하게 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세상과 이웃의 허물을 들여다보는 대신 멀찍이 밀어놓을 줄 아는 넓은 시각을 복으로 규정했다는 지적은 의미가 크다.
보조국사께서는 우리들 마음을 일컬어 ‘줄 없는 거문고’라 하셨다. ‘심금을 울린다.’고 할 때, 심금(心琴) 즉 ‘마음의 거문고’라는 말도 이러한 전통에서 유래된 말이다. 가야금과 거문고에는 줄이 있지만 마음의 거문고에는 줄이 없다. 줄이 없는 거문고가 과연 무슨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거문고는 줄의 제한을 받아 소리가 유한하지만 마음의 거문고는 줄이 없기 때문에 그 소리가 무한하다. 그러므로 마음의 거문고는 멜로디가 천상의 음악이요 해탈의 묘약인 것이다. 그 화음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공존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사람이 내는 마음의 향기가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릴 때, 너와 나의 벽은 허물어지고 가장 좋은 인간 관계는 꽃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갈수록 삭막하고 각박해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좀처럼 마음의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만 위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있는 존재인양 생각할 때 공존과 평화는 멀어지고 독선과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정과 학교, 이웃과 직장에서 마음의 거문고 소리가 훈훈하게 울릴 때, 우리 사회는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될 것이다. 사람이 내는 마음의 향기는 가족과 함께 있는 옆 사람을 웃게 만든다. 같이 살아가는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다면 나 자신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수많은 만남과 만남에서 정성을 다 하는 마음 자세를 갖는다면 삶에는 웃음과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일관 스님을 소개한 글 ;인터넷 월간 해인에서 따옴>
부처님은 법을 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두 사람이 한 길을 함께 가지 말라’고 했다. 끊임없이 홀로 수행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라는 뜻일 것이다. 일관 스님은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그 길을 가고 있다.
깊디깊은 산사의 울울한 나무숲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휘황찬란하게 북적대는 사람 숲 한가운데에서 법의를 입고 오도카니 앉아 법을 전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몸소 대중 불교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산사의 바람이밀고 지나가는 풍경소리가 아닌 차들이 어깨를 들이밀며 붕붕대는 소리 속에서, 밥짓는 굴뚝연기가 아닌 자동차 시커먼 매연 속에서 큰 보폭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가만히 고개 들어 한 덩이 흰 구름 같은 법문을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들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이다. 곧 흩어지고 말 흰 구름인 우리는, 그렇게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임을 안다.
스님은 현재 남양주 불암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서울상계동 보현사와 목동 향림사에서도 포교 활동 중이다.
종단의 종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줄곧 포교에 뜻을 두고 걸음을 옮긴다. 그렇다고 스님이 처음부터 포교에 원력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출가 이후 줄곧 선방에만 앉아 있었던 이가 바로 일관스님이다.
“나는 참선이 내게 참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행자 때부터 혜암 스님을 모셨는데 스님도 내게 그러셨어요. 중은 좌복에서 죽는 게 수지 맞는 장사라고.”
혜암 스님을 모시면서 수행자는 수행에 목숨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에 죽 공양을 하면 한두 시간씩 법문을 해주곤 하셨는데 수행자로 사시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스님은 좌복에서 내려앉았다. 그것 또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내려 앉혀졌고 그러다가 도심으로 흘러흘러 내려왔다. 88년에 은사 스님인 일면 스님이 한철만 와있어 달라고 해서 왔다가 마침내 제 둥지를 찾은 동물처럼 앉게 된 것이다.
“상계동에서 살게 됐는데, 난 그땐 염불도 못했어요. 그렇게 집을 지키고 있다 보니 신도가 점점 몰려들어 팔백 세대가 됐으니 어쩌겠어요, 밤에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러나 스님은 수행 가운데 포교가 있고 포교 가운데 수행이 있다는 말씀을 항시 마음에 품고 산다. 수행이 곧 포교이며 포교가 곧 수행인 것, 그것을 후학들 또한 사무치게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이란다. 그러니 스님이 도심에서 포교를 한다고 하여 수행자가 아닌 것은 아니란 말이다. 진심이란 것은 어떠한 방법을 통과해도 뒤틀리거나 상하지 않고 오롯하게 제 모습을 지키지 않는가. 그토록 까탈하고 엄하다는 혜암 스님이 일관 스님을 예뻐한 것도 다 그 진심 때문이다.
<일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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