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그건 사랑이었다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3. 5. 2. 20:36

   거칠기만 했습니다. 논에 물을 대고 피를 뽑느라 그랬지요. 밭에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느라 그랬습니다. 굳은살이 배어 단단한 돌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새벽이면 밭으로 나가 허리를 구부리고 잡초를 뽑고 채소를 거두었습니다. 거둔 수확은 시장에 내다 팔았고 남은 것은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몇 푼 안 되는 돈은 자식들 공부시키는 데 쓰였습니다. 예전 우리네 부모님 모습입니다.

최근 뒤뜰에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잔디를 걷어내고 흙을 사 넣었습니다. 10 kg 무게로 100포대 이상 들어간 듯합니다. 지난 주말 텃밭에 고랑을 내고 상치와 쑥갓, 열무와 시금치 씨를 뿌렸습니다.

일을 하면서 부모님 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 찬바람을 맞으며 가지치기를 하시던 모습이며 퇴비를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골고루 뿌려주시던 모습. 곡괭이로 땅을 뒤집으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습니다. 손은 성할 날 없었습니다. 이제 제가 그때 부모님 모습이 되어 땅을 일구고 있습니다.

땅을 뒤집으며, 씨를 뿌리며 행복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생산성이 없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일한 양에 비해 되돌아오는 게 너무나 적다고 투덜댔습니다. 알량한 지식을 엉뚱한 곳에 대입하여 ROI(Return on Investment)나 따지고 있었습니다흙을 만져보니 그게 얼마나 정직한 일인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침 일찍 들이나 밭에 나가 물을 대고 김매기를 하며 채소를 솎아주는 일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벼와 곡식, 채소에 대한 사랑이자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부모님 젊으셨던 시절에는 이를 깨닫지 못하다가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늙고 병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신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됩니다.

흙은 정직함을 가르쳐주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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