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동안의 짧은 시간에 자동차로 뉴욕을 다녀와야 했으니 피곤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일 화요일 이틀을 일한 뒤 워털루로 갔었다. 몸살이 났는지 다음날 일어나지 못했다. 일터인 병원엔 아파서 출근이 어렵겠다고 미리 전화를 한 모양이다. 직장에 병가를 낸 채 꼬박 하루를 쉰 후 오후 늦게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수제비를 끓여주겠다고 한다. 한국식품점에 가더니 바지락을 사왔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낯익은 수제비를 내왔다. 한술 떠 입안으로 가져가니 바닷냄새가 난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게 간도 적당하다.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면서 상도동 언덕 아래 버스정류장 옆 식당에서 사 먹던 수제비 생각이 난다. 쉬는 날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정류장 아래 식당으로 내려가 김밥 한 줄에 수제비 한 그릇을 시켜 먹곤 했다. 대여섯 명이 앉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좁은 식당이었지만 맛은 그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좁은 식당 안은 늘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때 먹던 수제비 맛과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을 감칠맛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로 끓였을 터인데 첫 솜씨치고는 제법이다. 엄마를 닮아 음식 솜씨가 좋을 것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전날 딸은 스테이크 하우스 케그(The Keg stake house)에서 저녁을 샀다. 스테이크에 맥주와 와인, 디저트에다 커피까지. 엄마 생일이라고 한턱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직장을 얻어 경제적으로 부담을 덜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알아서 일도 잘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저녁까지 사주니 기특하다.
식사 중 십일조 헌금을 잘 드리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격주로 근무하는 일정 때문에 이 주에 한 번씩 교회에 출석한다. 한 주 걸러 페이첵(Pay cheque)을 받으니 출석할 때마다 십일조 헌금을 드리게 된단다. 많게는 사오백 불을 드릴 때도 있었다고 했다.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삶에 있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딸로 성장해준 것이 감사하다. 스물셋의 나이에 제법 철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 제 아빠보다 몇 배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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